부처님 오신 날이다.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어느 절에 이름을 올리고 소속이 되어있지 않다, 소속이 되면 자유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마음 가는 대로 찾아다니다 보니 며칠 전부터 이번 초파일에는 어디로 갈까를 생각다가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정이 가는 진관사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평소 습관 때문에 잠들지 못해 새벽에 가려다가 아침을 먹고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요즘 개발이 진행되면서 진관사 진입로에는 넓은 대지가 조성 중인데 오늘은 그곳이 다 주차장이 되어있고 비가 오는데도 소형 버스들이 끝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일까 질서도 없고 장소는 협소하고 온통 어수선한데 이왕 왔으니 법요식이라도 보고 가야겠다고 한참을 기다리는데 조금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예정보다 식이 늦어지고 질서도 없는 가운데 식이 시작되었는데 반야심경이 끝나자마자 기관장과 정치인들 헌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너무 속상했다.
부처님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자비를 내리시는데 부처님 앞에서도 그들은 자신을 나타내고 싶었는지 아니 면사찰에서는 비가 오는 가운데 불편하게 법요식을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왜 그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특별대접을 하는지 그들이 복을 짓기 위해 왔다면 일반 신도와 같이 조용히 참여만 해도 부처님은 다 아실 텐데, 그런 절차가 싫어서 중도에 밖으로 나와서 근처에 있는 북한 산봉은 사로 가서 정근을 드리고 돌아왔다. 한 번씩 진관사에서 산사음악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들이 나타나 긴 시간을 자기를 알리는 연설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걸 보고 다시는 가기 싫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천천히 비를 맞으면서 걷기로 하고 돌이 돌아 북한산을 보면서 진관 공원으로 들어오는데 절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산들이 비가 오니 더욱 싱그럽고 운무와 더불어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저것이 진리고 저것이 도다. 무위의 도, 무위의 질서가 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