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
고려산은 봄의 절정이고, 진달래는 고려산의 절정이고, 연분홍의 취기는 감정의 절정이었다. 절정으로 치닫는 꽃밭에 향기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거기다가 꿀맛 같은 향기까지 있었더다면 누가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겠는가. 술에 취하면 약이라도 있지만 꽃에 취하면 약도 소용없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가는 길은 묵묵히 다가 가지만, 소문만 듣고 가는 길엔 의심하는 마음이 수반 된다. 고려산이라고 들어섰는데 머릿속에 먼저 그림을 그리고 온 탓에 아무리 봐도 특별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말산 진달래보다 나은 게 뭐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이왕 왔으니 정상까지는 가 봐야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산등성이 하나를 넘고 정상이 보이는데도 진달래는 특별하지 않고 시기가 일러서 그런가 또 실망을 하겠다 싶었는데 정상에 다다르니 진달래 풍경을 찍어서 세워 둔 아주 큰 풍경사진이 있어서 진달래를 못 봤으니 여기서 사진이라도 찍자 하는 마음이 다 같은 것이었는지 모두들 그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양면성에는 반전이 있는 법, 그렇게 겨우 가짜 사진을 찍고 한 고개 넘어서니 "이게 웬일이야"산등성이를 기준으로 한쪽은 겨울이고 한쪽은 우리가 그리고 있던 그 찬란한 그림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마치 연예인들이 개량한복이라고 입고 나오는 어깨를 다 드러내고 어깨끈 하나에 화려한 치마만 입은 그런 모습같이 민둥산에 진달래 치마를 휘감고 있는 형국이었다.
드디어 반전이 시작되고 일행은 들뜬 기분으로 꽃밭 속으로 마구 뛰어들었다. 그렇게 화려한 꽃밭 속에서도 더 탐스런 곳으로 스며들면서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고 그것도 부족해서 그 분홍 물결을 한눈에 다 넣고 싶은 욕심에 오래 머물지 않고 빠져나와 아래쪽에서 쳐다보면 될 것 같아 내려갔는데 꽃나무가 키가 커서 시야를 막아버려 반대편으로 올라가서 봐야지 하면서 가다 보니 점점 시야에서 거리가 멀어져 후회가 되었다.
차라리 꽃밭에서 더 머물 걸, 크든 작든 욕심이란 놈은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는 걸 깨닫게 한다. 삶에도 예상치 못한 기복이 있거든 이런 반전의 절정이 뒤따라야 살맛이 나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말을 배우지 못했다면 이 현란한 풍경을 보고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새삼 내 감정을 내 맘대로 말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바이며, 이 아름다운 세상, 세상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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