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9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3단계 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9.28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적인 날을 기념하는 걷기 대회가 인천 월미도에서 출정식을 가졌다. 월미도에서 인천 아라뱃길을 통과하고 밤새도록 걸어서 29일 아침 6시 광화문에 도착하는 길이며 총 66킬로 15시간 소요가 되는 거리다. 길은 3단계로 나누어 5킬로. 20킬로 66킬로, 이 중에서 우리는 약 12킬로를 걸었다. 이런 행사를 통하여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역사와 정세를 한 번 되새길 수 있으니 감사하고 좋은 일이다. 완보가 목적이 아니고 출정식 참석 후 우리는 월미공원을 걷고 공원에 있는 한국 이민사 박물관과 차이나타운, 자유공원을 걷는 일정으로 끝났다.
인천역 앞에 있는 철도 탄생 역의 조형물
월미공원으로 가는 길
이민사박물관에서 본 우리나라 이민의 역사,
1902년 12월 22일,하와이 이민이 처음으로 시작, 현재까지 세계 각국으로 이민을 간 숫자가 700만이 넘는다고 한다. 하와이 이민은 절반이 내리 교회 신자들이었고 존스 목사가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갤릭호를 타고 떠났다. 전시관에는 짐을 꾸리던 모습과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하는 모습, 그곳에서의 생활상이 재현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이민자들이 남자들 위주로 가다 보니 여자들이 부족해서 결혼의 문제점이 생기자 사진 중매가 있었고 사진 한 장만 보고 떠난 결혼이민이 있었는데 머너먼 이국땅에서 상대를 고를 처지도 못되고 원치 않는 남자라도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되돌아오기는 더욱 힘들었으니 그렇게 결혼을 해서 정착을 하고 이민자들의 2세 3세가 한인사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임시정부 자금을 조달했다고 하니 후대로써 너무나 뭉클하고 감사했다.
1905년에는 일본이 조직적은 계략으로 1033명을 불법적인 이민으로 멕시코로 보냈고 구한말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떠났는데 사탕수수보다 더 힘든 에네켄 농장에서 일을 했다. 날카롭고 억센 에네켄이어서 몸이 성 할 날이 없었겠지만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고단한 이민생활을 알고 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미국 국립문서관리기록청 보관문서에 나타난 승객명단을 정리한 것인데 1903년 1.13일부터 1905년 8.8일까지의 64회에 걸쳐 7400명이 태평양을 건너갔다고 한다.
월미공원 전망대,이곳에서 본 360도의 조망은 마치 중국 상해 동방명주에서 바라본 황푸강의 풍경과 비슷했다. 인천의 부두들이 다 보이고 멀리 자유공원도 보이고 인천대교와 인천의 발전상이 한눈에 다 보였다.
인천 6,7,8부대의 풍경인데 주목할 것은 원기둥 같은 곡물 저장고다. 회색빛의 구조물이 기적의 꽃으로 재탄생한 것인데 스토리가 있는 벽화는 세계 디자인상을 받았고 세계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벽화라고 한다. 요즘은 이 벽화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스토리는 책장과도 같은 모습에서 소년이 곡물과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성인이 되어 나오는 유년에서 성인까지의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높이 50미터의 16개의 원기둥 같고 책꽂이 같은 벽화를 그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인천 자유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며 인천항 개항 후 서양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정착하고 그들의 여가활동을 위해서 조성된 공원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 백주년 기념탑이 있다. 가난한 나라에 들어와서 사치를 부리던 서양인들의 처세가 어쩌면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고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또한 역사였으니 지금은 시민이 즐기는 여가공간이 되었으니 역사는 흘러가나 보다.
인천대교가 바다 가운데 하나의 실선처럼 보인다.
인어공주의 상륙
고마리꽃 밭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인천 제8 부두 출입문 구조물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문인 중화문,
삼국지 내용을 재현한 벽화, 그림으로 그린 게 아니라 타일로 재작 해서 시간이 흘러도 때 묻지 않을 것 같아서 영구적인 벽화다. 그림도 아주 훌륭해서 중국인의 예술성까지 돋보이는 섬세한 그림의 벽화가 볼거리였다.
자유공원길,
차이나타운의 동화마을, 세계명작의 주인공들과 내용들이 구조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책꽂이 모형의 구조물이 이색적인 거리다.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앞에 노랗고 빨간 장미를 헌화하는 듯한 사진으로 찍었다.
잘생긴 인물이 그대로 재현된 동상은 상륙한 지점인 월미도를 향하고 있다.
이 멋진 노장군이 트루만 대통령과의 불화로 은퇴하면서 남긴 연설 중에 아직도 회자되는 유명한 말이 생각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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