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한국 국제 걷기 대회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대문 밖에 바짝 붙어 서 있다. 4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지만 계절이 바뀐다는 것이 한 계절이 다른 계절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맛보기처럼 꼭 한 번 매운맛을 보여주고 인식시킨 다음에 서서히 사람이 젖어들게 한다. 그래서 더위든 추위든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된다. 걷기 대회 행사 전 날 밤부터 초겨울의 매운맛을 느꼈지만 가을의 꼬리를 딱 자르지 못한 마음 때문일까 완전한 겨울채비를 갖추지 않고 나갔더니 한참 서 있으니 얇은 옷 속으로 바람도 데워지고 싶었는지 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행사란 늘 그렇듯이 각 기관장들의 소개와 인사말 그런 겉치레를 거쳐야 한다. 빨리 걸어서 체온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급해져서 사전 행사가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국제 걷기 대회가 경주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벌써 25회째인데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십 년도 더 전 같으면 걷는다는 것이 내 관심사 밖이었으니 몰랐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참여해보는 큰 행사에 호기심으로 갔더니 각국에서 참여한 외국인 대회 관계자들과 남녀노소가 많이 모였다. 행사장도 처음 가보는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가든파이브 광장에서 출발했는데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 틈에 꺼어본 게 처음이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만들기 위해서 나온듯했다.
처음 출발 구간은 도심을 통과해야 하는 곳이어서 신호등을 몇 번이나 건너야 되는 길이다. 그러다 보니 그 많던 사람들의 숫자는 몇 동강으로 나누어져서 탄천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지점에서 우리끼리가 되기도 했다. 탄천 위에 놓여 있는 숯내교에서 처음으로 넓게 흐르는 탄천을 보았다. 나에게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사는 곳이 탄천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강의 발원지는 일부러 찾아내지 않으면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며 발원지라고 하면 첫 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염되지 않은 물이란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용인 기흥구 청덕동 우리 동네 탄천 발원지는 좁다란 실개천 같은 곳이고 숲이 우거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흐르다가 산책로, 자전거 도로와 함께 분당 쪽으로 흘러가는데 사계절 물줄기가 끊어지진 않지만 긴 35킬로가 넘는 하천의 상류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졸졸 흐른다. 그러던 것이 어제 탄천을 오르내리면서 본 몇몇 구간에서 어찌나 넓고 힘차게 흐르는지 무척 놀라웠다. 다시 한번 "내가 저 탄천의 상류에 산다"라는 자부심 같은 것을 일깨워 유심히 관심을 가지고 길을 걸었다. 물은 좁으면 깊게 흐르고 넓으면 얕게 흐르다가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 넓은 곳을 만나면 넓은 강이 되고 그것을 작은 종지에 떠 담으면 아주 작은 종짓 물이 되지만 그릇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성품은 본질은 언제나 변하지 않고 다만 모양만 다를 뿐이다.
아침엔 조금 추웠으니 점점 기온이 오르고 해가 나면서 푸른 가을 하늘과 솔솔 부는 찬 바람이 걷기에 너무 좋아서 강변에 가을꽃 같은 억새길을 걷는 즐거움이 참 좋았다. 도심을 벗어나서 탄천을 따라 올라갔다가 헌인릉에서 반환점을 돌어 탄천 건너편으로 다시 그 줄기를 따라 세곡천, 장지천을 지나는 하천길을 따라 걸을 때는 소풍 나온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걸었다.
무대에는 러시아 연방의 극동지역이라는 것 외 아는 것이 없는 이름도 낯선 먼 나라에서 어떻게 왔는지 어린아이들이 원주민 복장으로 전통춤을 보여주고 있다.
숯내교 아래 강폭이 넓어진 탄천
세곡동 세곡 정과 세곡지, 물이 바짝 말라있는데 바닥을 보면 박석이 깔려있어 멋으로 조성된 게 표가 난다.
계수나무, 처음으로 본 나무다. 세곡동을 지나는데 솜사탕 같은 향기가 나서 보니 도로가에 심어져 있는 계수나무향이었다. 중국 계림이 원사 지이며 은목서, 금목서와 함께 목서 종류인데 목소는 향기 나는 나무라고 한다. 잎은 완벽한 하트 모양이고 노랗게 단풍이 들수록 향기가 짙어진다.
헌인릉 재실, 헌인릉과 떨어져 도로가에 있다.
넓은 차도 양편에 노랗게 산국이 뒤덮여 있어 향기가 가을바람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든다.
탄천 둔치, 스크렁과 억새가 양쪽에 마치 장식이 되어 있는 듯하다. 걸어가는 길은 위쪽 방천길인데 우리는 둔치가 너무 좋아서 아래 길로 내려서서 탄천을 따라 걸었다.
깨끗해진 탄천.
탄천을 가로질러 세곡천 쪽으로 간다.
한삼 넝쿨에도 꽃이 피었는데 꽃은 처음 보는 거다.
세곡천 3교의 돌다리,
세곡천은 강남구 대모산과 구룡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세곡동을 지나 탄천으로 합류한다. 탄천과 한 몸이 된 세곡천은 강남구, 송파구를 통과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 골짝골짝에서 흘러든 계곡물들과 뒤섞이면 출신성분이 다 사라지고 한강이란 이름으로 바다로 간다. 바다에서 만난 강들은 높고 낮은 곳 따지지 않고 어느 강에서 왔든 깨끗하고 더러움도 따지지 않고 다 받아들인 바다는 평등이란 이름으로 하나 되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가장 큰 힘으로 존재한다.
세곡천의 물이 맑고 먹이들이 많아졌는지 왜가리들이 모여들었다.
탄천을 다 지나고 이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장지천이다. 송파구를 가로지르는 장지 천도 탄천으로 합류하여 함께 한강으로 가는 여정에 오른다.
장지천에서 가든 파이부로 올라가는 길
10킬로를 완보했다. 날씨가 좋아서 더 할 수도 있는데 짧게 끝내고 오랜만에 해지기 전에 집으로 가는 것도 좋았다.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색의 길에서(석성산 통화사) (0) | 2019.11.11 |
---|---|
2019년의 만추(용인외대 가는길) (0) | 2019.11.10 |
9.28 서울수복기념 걷기(인천 월미도) (0) | 2019.10.01 |
추석 전 고궁나들이(고종의 길,중명전) (0) | 2019.09.17 |
제주올레 충남지부 정모에서.... (0) | 2019.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