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9일, 정월대보름을 하루 지나고 한 귀퉁이가 약간 덜 찬 것 같았던 만월을 설악산 대청봉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채워서 봤다.
겨울이면 당연히 보고 즐겼던 눈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눈이란 것이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되어버렸다. 그러나 찾아가면 그 속에 빠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는 설악산이 있어서 꿈속 같은 설경을 즐기고 왔다. 당연한 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는 걸 알면 매사, 매 순간이 다 소중한 줄을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다. 더구나 전염병인 폐렴이 돌고 있어서 온통 마음이 어수선해서 외출까지 자제하고 있던 차에 설악산 가자는 친구의 한 마디에 얼른 따라나섰다. 거기 가면 만날 수 있었으면, 기다리던 겨울꽃을.......
설악에서 봐야 하는 것들을 한 가지만 빼고 다 봤다. 그 한 가지는 바람 뒤에 숨어서 늘 노리고 있던 먼지, 바람이 잠들기만 하면 습격하던 먼지가 설악에서는 감히 그 악행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지 날씨가 너무 맑고 깨끗한데 눈 끼지 쌓였으니 눈부신 오감을 다 채워주는 멋진 산행이다. 1박 2일 일정으로 승용차에 다섯 명이 타고 7시 30분에 출발해서 백담사행 셔틀버스 주차장 근처에 차를 맡기고 출발하는데 줄을 서지 않고 셔틀을 타는 것도 너무 좋았다. 백담계곡이 하얗게 얼어 있는 첫 장면을 보면서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올라갔다. 시작점에서는 흙길이다가 조금 더 잠든 단풍길을 걸어 들어가니 때 묻은 눈이 깔려 있더니 영시암에 도착하니까 거기서부터는 밟아도 때 묻지 않는 눈길이었다. 그래서 더 깊이 들어가면 기대하던 설경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면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간다. 수렴동 계곡을 지나는데 물이 흐르던 계곡은 다 얼음이고 계곡을 이쁘게 장식하고 있는 바윗돌들 위로 소복이 눈이 쌓여 있어 마치 밤새 장독 위에 쌓여 있던 어린 시절에 보았던 그런 모습 같았다. 수렴동에서 잠시 쉬었다가 구담 계곡을 오르는데 계곡은 꽁꽁 얼어붙었고 9개의 담 들 만이 숨구멍을 만들면서 이쁘게 옥수를 담고 투명한 바닥을 보이고 있다.
구담봉 계곡을 다 지나고 봉정암을 향하여 오르는데 갈수록 눈은 깊게 쌓여서 스틱을 꽂아 보니 약 50센티는 되어 보인다. 온통 눈으로 덮인 계곡에 놓여 있는 다리를 여러 개를 지나는데 눈이 쌓이지 않고 빠지도록 되어 있는 철계단의 구멍까지 다 눈으로 메우고도 더 쌓여서 계단인지 길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수북한 눈길을 걸으면서 누리는 자유가 너무 그리웠는데 이 얼마 만에 해보는 놀이인지, 눈 속에 빠져도 보고 눈으로 건배도 하고 마음껏 자유로웠다. 봉정암에 갈 때마다 전경을 온전히 볼 수 없었는데 날씨가 얼마나 맑고 푸른지 사리탑 위에서 오세암 넘어가는 방향으로 펼쳐져 있는 설악산 유명한 암봉들을 다 볼 수 있었다. 갈 수 없었던 용아장성이 눈앞이고 멀리 공룡능선 화채봉, 범봉도 선명이 보였다 뒤돌아 서면 소청의 밋밋한 봉우리가 하얗게 덮여 있는, 사방이 온통 웅장한 산세들이 나를 감싸고 있는 그곳에 섰을 때의 뭉클한 감동, 그것은 자연이 주는 행복이었다.
봉정암에서 깊은 감동을 채우고 소청으로 올라가는데 날은 저물고 쉬지 않고 걸었던 눈길의 5시간이 지나니 오르는 것이 한계일만큼 힘든 구간이었다 눈은 더욱 깊고 자칫 한 발 잘못 넣으면 깊이 빠져버려서 스틱도 함부로 짚을 수 없었다 힘들게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소청 대피소에 노을이 물들고 손발이 시렸지만 일행은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 아름다운 노을을 그냥 져버리게 둘 수 없어 혼자서 아름답게 담아내고 싶었다. 완벽했다. 이제 일정을 접고 대피소에서 저녁을 먹고 났는데 이쁜 그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내생에 가장 앙증맞은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몇 개의 파이에 촛불을 켜고 매실주까지 고이 품고 와서는 조그마한 술잔으로 다섯 잔을 만들어 축배를 들고 나니 차가워진 온몸에 열기가 돌아서 추위가 놓이고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인 파티를 마지막으로 하루 일정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마룻바닥에 담요 두장을 깔았지만 냉기도 올라오고 쉽게 잠들리 없었다. 그러다가 새벽 2시가 되니까 난방이 후끈하게 들어오고 추위가 놓이자 출발할 때 보고 싶었던 밤 풍경인, 만월과 깜깜한 설악의 밤에 빛나는 별밭이 보고 싶어서 결국 카메라를 들고 나왔더니 만월을 스치고 날아다니는 눈 알갱와 구름이 빠르게 흐르면서 달빛을 희롱하고 있는 설악의 밤이 너무 좋았다. 생각했던 별밭은 아니었지만 대신 먼 산 아래 속초에 별들이 다 내려앉았는지 거기가 별밭 같은 야경으로 검은 밤을 수놓고 있었다. 이제 잠들어봐야지 했지만 그래도 잠 못 들고 꼬박 하루를 지새운 소청의 밤이었다. 새벽에는 대청으로 간다.
바위에서 불쑥 돋아난 나무가 묘하게 자라면서 나무가 바위의 일부인양 착각을 한 듯이 목질이 바위가 똑같은 질감이 되었다.
봉정암에 거의 다다르면 먼저 암자가 있음을 보여주는 듯한 불상 바위가 서 있다.
봉정암의 마니차, 이것은 티베트 불교에서 손에 쥐고 늘 일상처럼 돌리고 있는 것인데 글을 모르던 시대에 경정을 읽을 수 없는 중생을 위하여 한 번 돌리기만 해도 경전 한 권을 읽은 거와 같고 돌릴 때마다 번뇌와 업장이 사라진다고 전해 온 마니차이며 기구에는 경전을 새겨 넣어서 돌리게 했다는 부처님의 따뜻한 배려가 되는 기구다.
고드름이 섯가래처럼 뻗으면서 자라난 특이한 모양
눈 덮인 봉정암
봉정암의 동자승 바위
적멸보궁
봉정암 사라 탑
사리탑에서 좀 더 위쪽으로 올라서 그 너머를 처음 봤다. 지나긴 했지만 어둡거나 구름에 싸여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너무 깨끗하고 선명하게 봤다.
바로 앞에 가보지 못한 용아장성이 있고 공룡능선의 범봉, 화채봉이 다 보였다.
용아장성이 꼬 앞에......
눈 속에 있는 사라 탑이 아름답다.
소청도 깨끗하게 보인다.
봉정암에서 소청으로 오르면서 뒤돌아보면 멋진 암봉들이 암자를 둘러치고 수호신처럼 받치고 있다.
소청 대피소에 도착하니 노을이 장관이다. 이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올랐더니 제시간에 도착해서 일몰 풍경까지 볼 수 있었다.
대피소에서 저녁을 먹고 났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 내가 아끼는 그녀가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파이에 촛불을 켜고 매실주 한 병까지 곱게 지고 와서
너무 이쁘고 감동적인 생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