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저쪽보다는.....
봄이 되면 진달래, 가을이면 단풍을 보기 위해 먼 곳의 명산만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가까운 곳은 무시해 계절을 놓치곤 했더니 가까운 수락산에 이렇게 고운 진달래가 많을 줄 몰랐다. 수락산을 수없이 다녔지만 진달래가 피는 걸 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멀리 못 가서 수락산에 갔더니 놀라울 정도로 진달래가 많았다.
코스는, 장암역에서 산 쪽으로 돌아서면 도로 건너 노 강서원 방향으로 들어서서 조금 올라가면 석림사가 있고 절에서 등산로 표시를 따라가다가 삼거리에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면 된다. 오늘의 목표는 사실 꽃보다는 기차바위를 타는 것이지만 이왕이면 진달래까지 볼 수 있는 시기를 맞춰 가서 둘 다 만족하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아주 적기여서 하루 종일 행복한 걸음이었다. 처음으로 가보는 계곡인데 깊고 넓고 여름에는 풍요로운 계곡이 되어 요산요수의 장소가 될 것 같았다.
말로 그리는 그림 한 폭, 왼쪽에는 넓은 계곡에 마당 같은 반석이 있고 위쪽에는 낙차가 큰 폭포가 가난하지만 평평한 암석 옆 산기슭에는 진달래가 진분홍 바탕색을 채색한 다음 갓 피어나는 나무들의 여린 싹들이 포름 한 연둣빛을 분홍 바탕 위로 점점이 맺힌 가지를 드리우고 또 한편에는 아직 선잠 깬 물오른 검은 나무기둥이 서 있어 연두 계열 속에서 더 짙어진 소나무들이 조합을 이루어내는 무대에 새봄의 진달래 연출이 너무 아름다웁고 계곡의 고인 물에는 지난가을 띄워둔 색 바랜 낙엽이 아직도 동그란 돌그릇에 떠 있었다. 그 풍경 속에 차 마시는 여인들이 또한 그림처럼 놀다 가니 이 얼마나 멋진 봄의 연출인가. 마냥 놀고 싶은 그 좋은 자리를 떠나 능선을 오르는 내내 꽃은 분홍 길을 마련해 두어서 온 마음에 분홍 물을 들이면서 기차바위 밑에 이르렀다.
기차바위, 그 아찔하고 가슴 뛰던 기억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한데 그 앞에서 오를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내려서자니 아래가 아득하고 쳐다보니 위가 아득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는데 먼저 올라간 친구들의 목소리가 결국 나를 끌어올렸다. 처음 올랐을 때 다시는 안 한다고 해놓고 산고의 고통을 잊고 들째를 낳는 심정으로 또 곡예를 했다. 역시 다시는 오르지 않으려고 다짐할 만큼 가슴이 사정없이 뛰고 숨이 차면서 아찔하고 무서웠다. 잠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정상을 항해 가는데 올라올 때 물들었던 분홍 마음에 시커멓게 다 지워진 기차바위 트라우마 위로 다시 3층 구조로 채색되는 진달래꽃길이 이어져서 어느새 시꺼먼 두려움은 가슴 밑바닥에 잠재된 채 다시 분홍 마음 일렁이며 행복한 고운 기억 만들면서 하산했다.
그 곱던 꽃길을 뒤로하고 민가로 내려오니 잠시 잊었던 근심은 우리가 누렸던 행복이 한바탕 꿈결이었나 싶게 만들었다. 세상 밖은 현실과 너무 달라서 꿈이었다고 할 수밖에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새봄은 모두에게 한바탕 꿈결 인양 사라져 가겠지만 꿈이 아니라는 걸 고이 간직하려고 그 모습 그대로 이곳에 그려둔다.
올라갈수록 작아지는 두 사람, 수직에 가까운 30미터의 절벽을 오른다. 한 번 해본 사람은 다시는 안 한다고 하는 암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