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8일
제주의 강풍은 육지의 태풍급이다. 그러나 비를 동반하지 하지 않으면 바람과 맞서기보다는 밀어주는 데로 순리를 따르면 그것도 또한 즐거움이 된다.
전 날부터 제주의 날씨예보가 좋지 않았다. 언젠가 비행기가 바다 위에서 착륙을 하지 못하고 선회하던 기억이 떠올라서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바람이 무섭다. 몇 번이나 날씨 체크를 하는데 다행히 바람의 발향이 일정하다.받아놓은 날을 어쩌지 못해서 출발했는데 다행이 무사히 착륙은 했는데 밤부터 온다던 비가 도착하니까 강풍이 비까지 데리고 불어닥쳐 우산도 무용지물이 되고 버스에서 내려서 표선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커피가게 쉬고 가게)까지 잠시 걸었는데 다 젖었다. 젖은 몸으로 방에 들어갔는데 감사하게도 먼저 간 친구가 따뜻하게 방을 데워 두어서 어찌나 좋던지, 자는 동안도 비가 창문을 떼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잠은 오지 않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부디 비든, 바람이든 한 가지만 있게 해 주소서"그게 통하지 않으면 하루를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통했다"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람은 그대로 강풍인데 비는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를 버리지 않고 우리는 1코스를 향해 갔다.
1코스의 풍경은 단연 말미오름과 알오름에서 바라보는 일출봉과 종달리 들판이다. 약간 시야가 흐리긴 하지만 바다와 들판과 동네가 한 폭의 그림을 여백도 없이 꽉 메우고 있어서 어떤 계절에 가도 실망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초여름에 갔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알오름 전체가 초록으로 덮이고 보라색 꿀풀이 초록 바탕에 포인트를 주던 곳이어서 억새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지난가을 무성했던 억새풀이 꽃은 지고 대만 남아 가을의 풍경을 짐작하게 해 준다.
알오름을 내려와서 종달리를 거쳐나가다 보면 이쁜 퐁낭이 있다. 지난여름 잎이 무성하던 팽나무 아래 쉬고 계시던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시겠지, 잠시 그날의 퐁낭과 할머니의 풍경이 아름답던 그림 한 장이 스쳐간다. 종달초등학교를 돌아 옛 소금밭을 지나면 성산 바다체험장인 얕은 해변이 나오는데 처음 걸을 때 그곳에 물이 빠져서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케는 장면도 보기 좋았는데 이번에는 물이 그리 깊지 않게 찰랑거려서 들어가고 싶었지만 바람이 거세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바람을 안고 가는 길은 사투의 각오가 있어야 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힘겹게 중간 스탬프 지점인 목화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쉬어간다. 목화휴게소는 쉬고 싶을 때 딱 그 지점에 있어서 바람에 지친 몸을 녹여주는데 아주 유용했다.
목화휴게소에서 성산 갑문까지 한참 동안 바닷길을 가야 되는데 비둘기도 바람이 힘겨운지 검은 돌에 하얗게 앉아서 시선을 끈다. 참 이쁘다.
성산 갑문을 지나 전에는 일출봉에 올랐다가 길을 이어갔는데 이번에는 바로 빠져서 마을을 지나 일출봉을 돌아보며 다시 해변길을 걷는데 어쩌다가 손에서 놓친 건 다 연이 되어 날아간다. 날아가고 잡고 하는 것도 재미있고 우스웠다. 그리고 바닷가 수풀 길을 조금 지나면 이곳에도 전에 보지 못한 4.3 유적지가 있었다. 제주에서는 바람도 비도 다 그분들의 슬픈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3월로 잡은 것은 유채꽃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으리란 생각 때문이었는데 정작 유채꽃은 4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런 중에도 광치기 해변에서 꽃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이 있어 1코스를 걸었는데 꽃밭은 있었으나 풍경도 돈으로 본다는 생각이 좀 제주와는 맞지 않는 발상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밭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면서도 꽃을 볼 수 있고 사진도 담을 수 있었지만 시기는 좀 이른 것 같았다. 해변에서는 지난여름 탐스럽고 이쁘던 문주란꽃도 누우런 잎을 흉하게 흔적을 남기고 대신 하얗고 굵은 씨앗을 소복이 떨구어 두어서 몇 개 주웠다. 바짝 말려서 기념으로 간작하려고,
이날은 바람과 싸우느라 많이 지쳐서 탑동에 있는 해수사우나로 가서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니 온 몸이 녹아내렸다. 시설이 좋고 한 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수면실과 식당, 매점까지 있어서 피로를 풀기엔 제격이고 아침에도 출발 전에 잠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니 한결 개운하고 좋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방황을 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는 말도 있듯이 나는 현명한 나날을 위해서 노력 중이다.
말미오름 풍경
알오름 오르는 길 이곳에서 보라색 꿀풀이 참 예쁘던 기억이 있는데 억새풀이, 이럴 줄 몰랐네.
퐁낭에서
광치기 해변 유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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