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2차 제주올레 14-1코스

반야화 2018. 3. 17. 13:08

2018.3.14일

제행무상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 없다지만 길조차 그러하구나. 다시 찾은 저지곶자왈 길은 반토막이 나고 청수곶자왈 무릉 곶자왈로 이어지는 전체가 숲길이던 그 좋던 코스가 오설록에서 끝나버리니 그 서운한 마음을 이어서 가파도까지 갔던 날이다.

 

처음 찾았을 때는 들머리부터 온갖 야생화가 담장을 장식하고 드넓은 숲을 가르며 청청히 들어섰던 그 길에 이번에는 춘래불사춘의 시기여서 선잠에서 깨어난 곶자왈은 아직 봄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있었지만 숲 속에 먼저 피어나 향기로 숲의 식구들을 깨우는 백서향이 있다기에 님 만나는 설렘을 담고 숲으로 들어섰다. 소문도 듣지 못했던 백서향이 어떤 꽃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무심코 조금 걷다 보니 누군가 "백서향이다"라고 외쳤다. 너무 반갑게 처음 대면하는 꽃에선 이름 그대로 향이 백리를 간다는 말 그대로 향이 너무 좋았다.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귀한 꽃을 보게 되니 처음의 푸르던 곶자왈에 못지않은 주인공 꽃 한 송이만으로도 하루가 충족되는 길이다.

 

백서향의 향기에 이끌려 더 깊숙히 들어간다. 초입에서는 향기롭고 이쁜 꽃이 길섶에 피어 있으면 꺾인다는 걸 안다는 듯 꽃은 가시덤불 속에 피어 있더니 제법 군락을 이루는 곳에서는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꽃을 꺾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마음 놓고 길섶에도 이쁘게 살고 있어서 보이는 데로 카메라에 담아와서 한 송이도 버리지 않고 영원히 시들지 않는 그림으로 남겨둔다. 향기까지 담아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향기는 내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겠다. 이제 저지곶자왈은 향기에 취해 더 잠들지 못하고 다 깨어나 지난날의 그때처럼 푸르름에 잠기게 되고 백서향은 향기를 안으로 머금고 아무도 몰라보게 숨은 듯 수풀 속에 잎만 키워가겠지 꽃이 없으면 그것이 백서향이란 걸 알지 못할 테니.

 

숲길을 지나고 드넓은 곶자왈 중심에 솟아 있는 문도지오름으로 간다. 오름으로 들어서면 소와 말들이 막아서기도 했는데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무리 지어 다니던 우마들은 한 마리만 오름을 독차지하고 문도지오름의 상징성을 띄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문도지오름과 너무도 잘 어울리던 그 많던 우마들이 인간에게 먹히는 일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오름 정상에서 사방을 조망하는데 마치 숲이 텅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오름에서 내려다보면 초록바다 같던 숲이 온통 흙빛이어서 그때의 기억을 살려 덧칠을 하면서 바라보았다. 일체유심조라,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바라보며 잠시 초록바다를 만들어서 풍덩 빠져 보았다.

 

문도지오름을 내려서니 메밀꽃이 하얗던 곳에는 보리가 자라고 다시 숲길로 이어 가는데 맛보기였던 한 두 그루의 백서향이 이번에는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벌이 온몸에 꽃가루를 묻히듯 나도 잠시 벌처럼 온몸에 향기로 물들이고 오래도록 향기를 기억하도록 진하게 향을 들이마셨다. 하루 종일이라도 숲 속에 놀고 싶었으나 가파도까지 가야 한다는 바쁜 마음에 남보다 빨리 뛰다시피 숲을 빠져나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다행히 다치진 않았고 아쉽게도 오설록에서 길은 끊기고 코스는 끝이 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백서향이 피어 있는 숲길이 잘려나가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길을 잘라간 누군가를 용서하기로 하고 숲을 나왔다.

 

백서향만큼이나 향기를 지닌 두 비구니 스님을 어제부터 동행한 것이 나에게는 두 가지의 향기가 있는 행보였다. 알고 보니 놀랍게도 경주에서 잠시나마 같은 선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경주에서 두 달 가까이 머물면서도 바로 옆방에 계시던 스님을 엉뚱한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걸 보면 산다는 것은 예측불허이며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는 것은 길이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연 줄 같은 것이란 걸 깨달았다

스님, 고운 발에 물집 생기지 않도록 준비 잘하시고 완주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완주하시면 아마도 득도하신 마음이 되실 것입니다. 선재동자의 구도 길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제주도 기념물 18호로 지정된 백서향

 

 

담 너머로 사람 구경하는 말

 

문도지오름 풍경

 

 

 

 

 

 

 

공짜 개 이끼

 

 

 

오설록 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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