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13일
여행 중에 좋은 날을 만나다는 것은 행운이자 선물이다. 오늘은 선물이 한 보따리다. 이른 아침에 창을 열었더니 푸른 새벽빛이 채 가시지 않은 화순 문화마을 숙소에서 보이는 산방산이 또렷하다. 이틀간을 먼지 속에 갇혀서 길을 걸었더니 목이 칼칼했는데 오늘은 맑은 공기로 목을 정화할 수 있는 초정수를 마시는 여정이 될 것 같다.
친구와 둘이 초여름에 농로에서 딸기를 따먹으며 걸었던 기억이 선명한 길이다.딸기들이 꽃처럼 이쁘게 농익어 있어도 아무도 손 데지 않고 온전히 달여 있어 길조차 이쁘고 한 움큼씩 따먹는 재미에 하루가 즐겁던 길인데 계절이 다르니 그 길 같지 않고 밭에는 탐스런 찰기장 꼬투리가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리에는 양배추, 적채, 콜라비들이 한창 수확 중이다. 같은 길이라도 다른 계절에 찾는 재미이기도 하다. 밭에는 내가 주식처럼 매일 먹는 야채들이어서 더욱 정감이 가고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길이다.
농로를 지나면 용수저수지가 있었는데 AI의 전염성 예방 때문에 우회되어 있어서 저수지와 작은 성당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13코스의 볼거리인데 아쉬운 채 특전사 길, 고사리 숲길로 들어섰다. 숲도 예전만큼 울창하지 않고 곳곳에 벌목이 되어 향량함마저 들어서 첫인상 같은 느낌이 아니어서 섭섭함마저 든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첫인상이 좋으면 그 기억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데 다시 찾은 길은 마치 첫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을 가슴에 꼭 간직하고 다시 만났는데 첫사랑의 얼굴에 주름진 모습 같아서 실망하고 돌아서는, 어쩌면 슬퍼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숲 속 어디쯤에 아주 작은 카페 같은 곳, 조수리 마을 청년회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 어디쯤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걷는데 생각과는 달이 거의 숲 끝부분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예전 같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남겨 두었던 고맙다는 인사가 빼곡했던 문구가 적힌 컵이 벽에 고정되어 있던 흔적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서 서운했다. 누가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제주바람에 견딜 수 없었겠지. 우리는 에전 기억을 살려 거기서 커피를 마시고 잠시 쉰 다음 특이한 기억이 선명한 의자마을로 들어섰다.
좋았던 모습이 한결같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인가,새파란 초록 바탕에 온갖 이쁜 의자들이 즐비해서 아름답고 신기한 의자마을이 빛바랜 채였고 머무르고 싶었던 장소여서 친구와 둘이 너무 좋아했던 곳이다. 스스로 단장 히지 못하는 사물은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지 못하면 퇴색되고 만다. 그래도 쉴 곳은 여기가 최고다. 의자마을 야외식탁에서 점심을 먹고 함께 걷기 팀과 합류해서 길을 간다. 함께 모여서 걸을 때는 사람도 풍경이 되고 긴 열을 지어서 가면 자연과 어우러진 이쁜 그림이 된다. 그 그림 속에서 뜻밖의 요소가 있다. 두 분의 스님이 바랑이 아닌 배낭을 메고 하얀 고무신 대신에 등산화를 신으시고 걷는 모습이 무척 이채롭고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13코스의 기억 중에는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이 저지오름 분화구다.미리 상상을 했다. 분화구 둘레길에 줄지어 둘러 선 사람들과 분화구 안으로 길게 늘어서 들어가는 장면을 연출하는 그림이다. 그런데 오름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당연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오름 분화구를 들리지 않고 빠져버리는 과정을 리더를 따라만 가다 보니 그만 놓치는 줄도 모르고 빠져나와버렸다. 순간 쌓던 성이 허물어지는 실망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오르기엔 너무 멀어져 있어서 그냥 가는데 이어지는 그 좋던 숲 속 길도 제대로 느끼 못하고 내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머물러 있었다.
저녁에는 오늘 완주를 하는 일행이 있어서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먼저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수첩을 확인하고 완주증을 받는 절차를 거치는데 그 과정이 너무 부러웠다.난 언제 다 걷고 완주증을 받아보나 싶어서다. 그리고 축하받고 축하하는 서로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언젠가는 저것이 내 모습이 기를 바라며 한참 쉬다가 제주지부 총무가 운영하는 돗 도구리 식당으로 가서 2차 축하자리가 있었는데 역시 부러웠다. 부라워하면 언젠가는 나도 된다.라고 말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축배를 들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제주에서 만날 것을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열명이나 모인 자리가 꽉 차서 마치 경기지부 모임 같았다.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축배로 끝을 맺었다.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과 성당
숲 속 아주 작은카페
의자마을
개발을 위해 땅을 파면 저렇게 많은 돌이 나와서 자연적으로 성이 되는 것 같은 돌무더기.
하얀 동백
자금우라고 한다. 난 꽃집에서 파는 천량금인 줄 알았다.
저지오름 바탕에 자금우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걸 처음 갔을 때는 보지 못한 것이다.
저지오름에서 본 풍경 사방의 조망이 참 아름다운 곳인데 오늘은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완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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