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제주 한수풀 역사순례길

반야화 2018. 3. 20. 15:51

 

2018.3.10일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그곳의 역사를 먼저 알아야 여행의 재미가 배가 되고 현장을 이해하기가 쉽다.

 

제주는 항쟁이 많았던 도시다. 크고 작은 항쟁 중에 대표적인 대몽항쟁, 4.3 항쟁을 꼽을 수 있다. 그저께는 삼별초 유적지도 봤고 오늘은 4.3 유적지가 있는 한수풀 역사순례길을 간다. 시작점인 옹포리 포구에서 출발해서 만뱅디묘역까지 가는 길이다.

 

숙소를 서귀포에 잡은 건 처음이다.서귀포 엠스테이 호텔에서 이틀 굶은 잠을 달게 자고 일어나 창을 여니 눈앞에 춘설이 희끗희끗한 한라산 정수리가 보인다. 한라산은 언제나 구름에 가려지는데 아, 좋다. 그 흔한 구름 한 자락 걸쳐두지 않은 모습을 다 드러내고 있다. 잠시 감상한 다음 조식을 먹고 나와 길잡이가 되어줄 올레님을 만나 동승하고 달려가는데 날씨가 얼마나 투명한지 보이는 모든 것이 윤기가 나고 반짝이는 기분 좋은 아침이다. 바람도 잠잠하고 기온까지 포근하니 꽃 몇 송이가 더 피어날 것 같은 봄이다. 날씨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행복할 시작이다.

 

봄이 와서 꽃이 피었나,꽃이 피어서 봄이 왔나. 봄과 꽃 그 어원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면 참 이쁜 우리말이다. 불가분의 두 글자를 마음속에 담고 순례길에 들어서는데 먼저 담장 너머 매화가 하얀 미소를 날려 보낸다. 그리고 길을 걷는 동안 제주의 봄꽃을 다 만난 셈이다. 동백, 매화, 유채, 수선화, 로즈메리 꽃 그리고 씨 뿌린듯한 한 밭 가득한 광대나물 꽃 개불알꽃 등.

옹포리 포구에서 길을 찾는데 표지판이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게 명월성지까지 갔다.그동안 제주에 대해 모르는 걸 또 한 가지 알아가는 중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3개월만에 제주목사로 부임해서 죽는 날까지 최 장기간 제주를 지켰던 이경록 제주목사, 그분이 처음 목성이었던 것을 헐고 더 단단한 석성으로 쌓았고 왜구에 맞서 제주를 지켜낸 위대한 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성은 길이가 1360미터 높이가 4.5 미터 되는 옹성이 있는 타원형의 아름다운 모습인데 성위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되어 있다. 우리는 성에 올라 걸어도 보고 차도 마시고 그림 같은 비양도를 바라보면서 잠시 머물렀다.

 

성을 내려와서 차도를 건너 들판으로 접어들면 양배추,콜라비,적채 등 밭에 있는 작물이 다 꽃이다. 꽃밭 같은 들판을 한참 지나다 보니 이곳이 군위 오 씨 명월파의 집성촌이었다. 명월리가 먼저인지 명월파가 먼저인지 지명의 유래를 생각하며 걷는데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건천이 있고 계곡 같은 건천 변에는 팽나무 군락지인 마실길이 참 아름답다. 마치 바오바브나무 같은 팽나무는 여름에는 온갖 덩굴들이 타고 올라 토피어리가 되어버리지만 지금은 군식구 하나 없는 팽나무의 진면목만이 다 보인다. 푸른 잎 하나 달지 않고도 저렇게 이쁜 몸매의 나무는 유일하지 싶다. 섬세한 실가지를 조화롭게 키우고 나무의 끝부분은 전지라도 한 것처럼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길이로 가지를 키우는 모습이 참 특이하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멋지다.

명월리를 조금 벗어나 다시 들판을 걸어 들어가면 축산농가가 모여 있는데 냄새가 고약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 우리의 몸과 들이 아니다.

"自他不二, 自他一如"다.키우고,먹고 배설하고, 다시 거름이 되어 돌고 도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냄새가 근본, 인본이다. 도인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니 후각이 무디어지고 괜찮더라.

 

명월리 축산농가를 다 지나고 동명리와의 경계 아래 쯤 밭담에 멋쟁이 하루방이 있어 사진을 찍고 가는데 위쪽에 보니 밭과 밭 사이에 작은 조각공원 같은 게 있어서 살펴봤더니 대한만국 석공예 명장 장공익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다 지나고 나니 그 분과 그 장소의 연관성을 찾지 않고 지나친 게 후회가 된다. 하필이면 잘 찾지도 못하는 외진 곳에 작품을 설치했는지, 연고가 있을 것 같은데 그분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 그냥 지나치게 된 것 같다.

 

동명리에서 차도를 한참 지나고 어느 오름같은 길을 넘어서면 만뱅디묘역 길, "하늘 가는 길"이 나온다. 꽃을 보면서 즐겁게 걸었던 길 막바지에 슬픔의 길이 있어서 잠시 그 시대의 아픈 역사를 아는 데로 되뇌어 본다. 4.3 사건은 그 시대는 잘 모르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 정도의 분노가 치미는 사건,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항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세계적인 제주, 본토 사람보다 외지인이 더 많을 것 같은 도시가 되었지만 무덤 속에 계시는 저분들이야말로 제주의 주인이고 저분들의 희생이 오늘 나 같은 사람이 찾아들어 즐기는 곳으로 만들어주셨다는 생각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묵념을 드린다.

 

오늘도 이 길을 안내해주신 올레님께 감사드립니다.

 

한수풀 역사순례길 안내판

 

 

 

명월성지의 성

 

 

 

 

 

기생하는 덩굴식물이 자고 있는 지금이 가장 편해보이는 퐁낭

 

 

로즈메리 꽃

 

비양도가 보이는 들판에 있는 양배추도 적채도 다 꽃같이 이쁘다.

 

 

돌밭, 돌씨를 뿌린듯한 밭이다. 돌을 밀어내고 싹을 키우려면 잡초만큼 억센 농작물만이 살아남겠다.

담장 밑에 가꾼듯한 광대나물 꽃과 까만 돌담도 이쁘다.

 

 

 

 

명월리 퐁낭 군락지

 

 

 

 

 

 

한 나무에 두 가지 동백꽃이 피었다.

멋쟁이 하루방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장공익 선생의 작품

예수와 어린양들인데 작품 설명이 없어서........

자연적인 돌 그대로에 조각한 얼굴들

천태만상을 딛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같은데.......

천태만상

 

금오름을 바라보면서 간식 먹는 중

 

 

금오름에서 나는 페러글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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