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날엔 꼭 남산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인 날이다.
흐릿한 서울 한복판 볼록하게 솟은 남산 위에 가을은 계절의 만찬을 차려놓고 우리들의 영혼을 살찌우라고 했다.
공자 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자연을 좋아하고 남산의 가을이 어떤 그림을 펼쳐놓았는지 알지만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날을 잡았다.
시작은 장충단 공원에서 부터였다.첫인상에서 우리는 폐부부터 활짝 열고 잎들의 발악 같기도 한 그 열정이 만들어낸 향을 마시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셋이면 말로써 독을 깨뜨릴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이 늦은 나이에도 어디에 동심이 들어 있었던지 밑바닥에 누르고 살았던 그 까불거림을 마구 쏟아도 좋은 자유와 방종이 가을 화폭에 그대로 탐긴 것 같았다. 오늘따라 하늘은 또 왜 그리도 맑고 푸르던지 지루 할 틈 없이 남산 산책로에 이르고 가을 물결과 인파 물결이 부딪치는 그 아름다운 길을 우리는 색도 바래지 않은 낙엽이 구르는 길을 따라 느리게 풍경들을 기계 속으로 옮기며 연신 웃고 다녔다.
남산은 서울시민의 산소공장이다. 서울의 정수리 같기도 한 그 숨골에서 솟아나는 맑은 공기를 공짜로 마시기 때문에 귀한 줄도 모르는 부당함에도 산이,자연이 무한 리필로 제공해 주는 이 공기에 인간들은 감사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도심은 답답하게 흐려서 마천루의 실루엣만 보일 정도였다.
극락정토가 서방세계에만 있으랴! 오늘 하루만으로도 이 즐거움, 이 행복, 이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이 바로 극락정토가 아닐까 생각게 하는 시간이고 오감이 다 만끽되는 참으로 즐거운 한 때를 만들었다. 그런 거야. 만들어 가는 거지 누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며 나 아닌 것으로부터 행복이 주어지길 바라지도 말 것이며 스스로 삶의 덫을 걷을 줄 알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야. 그렇게 하는 거야.
딱 한 번 살아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삶을 헛되이 보낸다면 남보다 빨리 지구에서 하차당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 그 행운을 마음껏 즐겼다.
조계사 국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