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의 행복의 도구가 되어주는 산행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하루를 그냥 보내고 나면 시간이 아까워질 만큼 매일이 좋은 날들이다. 9월 정기산행, 혼자 멀리 떨어져 나온 뒤 정기산행에는 꼭 참석한다는 나와의 약속이지만 그날이 되면 어디로 가든 목적지보다는 함께 한다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산은 높낮이를 떠나서 무조건 경외심을 가져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코스가 짧다고 해서 스틱 없이 오르는데 경사도가 심해서 몸의 지탱을 두 다리에만 부담을 주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북한산 의상봉 정도? 다행히 따가운 가을 햇살이 아니어서 무난히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억새 산행을 재미없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왜냐하면 억새밖에 볼 게 없을 것 같아서 가을이면 어느 산에나 있을법한 걸 뭐하러 일부러 찾아가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은 때로는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정상이 아니면 전체를 조망하기가 쉽지 않은데 억새만 무성한 산은 어느 곳으로 든 시야가 탁 트여서 우선 시야만큼 마음까지 그 넓이만큼 열리기 때문에 눈도 마음도 무한대로 넓어진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민둥산이라고 하니까 뭔가 없어 보이는 명칭 같아서 그보다는 은발산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정수리에서부터 하얗게 마치 노신사의 은발 같은 멋이 있는 산인데 누가 민둥산이라고 명칭을 붙였는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의 코스는 짧지만 억새군락의 규모는 대단해서 전체를 다 걷는다면 거기서 하루만 보내도 한 달간의 시름은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가을 일부분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다음에도 의심 없는 마음으로 억새밭을 찾고 싶은 마음이 되도록 아주 좋은 산행으로 이끌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