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덕풍계곡

반야화 2013. 6. 9. 13:58

미끌미끌, 울퉁불퉁, 아슬아슬. 여태껏 산행을 많이 했지만 이번처럼 곡예사 같은 산행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고, 두 번 할 수 없는, 그러나 험난한 과정이 앚혀지면 다시 하고 싶어 질 것 같은 곳.

 

마을 산악회가 어느덧 5년째를 맞고 있다. 처음으로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가족을 대동하고 나선 산행이다 보니 울진과 삼척에 걸쳐 있는 산행을 완주할 수 없는 대원들이 있어 2팀으로 나누어 마니아들은 완주를 계획하고 나머지는 다소 소풍 같은 코스를 갔기 때문에 우리는 2팀의 즐거움을 모르고 2팀은 우리의 곡예를 아직도 모르는 상태다. 처음엔 정상 2시간, 하산 5시간으로 예상했으니 하산길은 예상을 빗나가 6시간이 넘게 걸렸고 빡빡한 일정 때문에 쉬어가고 싶은 곳에 쉬지 못하고 내달려야 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떤 곳을 다녀왔는지 되집어 본다. 들머리에서부터 비가 온 다음이라 길은 촉촉하고 장차 어느 궁궐의 재목으로 모셔져 갈 듯한 금강송이 쭉쭉 뻗은 길을 가는데 그 솔밭에서 뿜어져 나오는 질 좋은 피톤치드의 향으로 우선 응봉산이 제공하는 향차를 마시는 기분으로 무난히 정상까지 올랐는데 하산길은 위태로운 급경사길이라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맛이라도 보여주듯이 그만 나는 3년 고개를 3 바뀌 정도 굴렀다. 지난번에 제주올레에서 낙상의 트라우마가 있는 데다가 구르는 순간 너무 놀라서 나뭇가지인지 돌부리인지 움켜 잡았다. 그걸 보는 일행들도 너무 놀랐으리라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러나 다행히 손목에 약간 찰과상만 있을 뿐 산행에 무리는 없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서 드디어 계곡을 만나니 참 반가웠다.

 

이제부터는 긴 계곡의 여정이다. 무엇이든 모르고 당하는 게 더 나은지도 모른다. 알았더라면 아마 못 갔을 수도 있겠지. 보통 어느 계곡이든 길이 있는데 덕풍계곡은 내가 보기엔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안전하다 싶은 곳으로 길을 만들면서 가는 곳 같았다. 큰 물이 지면 거센 물줄기가 높은 산 절벽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할퀴어놓은 곳에 밧줄을 걸쳐 놓고 그것을 잡아당기면서 옆으로 가제처럼 가야 하고 돌들은 반질반질하게 닳아서 미끄럽고 물줄기를 이리저리 건너면서 빠질 것 같았으나 다행히 먼저 지난이들이 리본을 메달아 놓은 곳, 그것이 곧 이정표이자 길이었다.

 

계곡을 잘 아는 산 대장님의 안내가 없었더라면 다 계곡에 갇혀 진퇴양난의 물고기 친구가 될 뻔했다. 그런데 그렇게 긴 길을 가도 가도 끝이 없고 각오가 되어 있는 5시간이 넘어가고 해는 빛을 잃어가고 있어 곳곳에 놀기 좋은 곳이 참 많았지만 어쨌든 어둡기 전에 이 계곡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 편히 쉬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것이 오늘의 힘든 과정이 잊힐 때쯤 다시 찾고 싶은 여지로 남으리라.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초등학생 2명이 합류를 했기 때문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였는데 힘들었겠지만 무사히 완주를 하는 걸 보고 장차 마을 산악회를 이끌어갈 대장 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이 무사히 험난했던 길 없는 길을 완주를 하고 나니 이미 해는 졌고 산 대장님의 주선으로 오픈카(트럭) 짐칸에 함께 타고 여성들은 앞칸에 타고 5킬로를 더 가야 했다. 저녁으로 회식이 예정돼 있었으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바로 출발했는데 돌아오면서 가만히 오늘의 여정을 되짚어 보니 아!!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으로. 한창나이에도 못 했던 만행을 점점 강도를 높이고 있구나 싶기도 하고 나에게 이런 즐거움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생각하면 무슨 낙으로 살까 싶지만 미리 슬픔을 당길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난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이번 같은 어려운 산행을 혼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빠지고 싶지 않아 제주 일정을 줄여서 돌아와 이튿날 산행에 합류를 했으니 하루 건너 1000미터의 높이를 두 번이나 올랐고 9시가, 8시간을 연달아 걸었고 땀은 몇 되를 흘린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의 체력에 문제가 생겨 행여 일행에게 민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앞으로 고려해 봐야겠지만 늘 밀며 당기며 배려해주는 회원들의 배려가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불가능할 때까지는 함께 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그림이 그려지는 1000m의 높이가 아래로는 계곡 위에 절벽이 되어 있고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었으며 켜켜이 쌓인 낙엽들이 물속에서 썩으면서 마치 묵은 쑥을 푹 삶아 쑥탕을 할 때의 물빛이었으나 물만큼은 너무나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은 1 급수였다. 한편으론 어떤 곳인지 몰랐기 때문에 도전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스펜스가 넘치는,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지는 체험이었다. 끝으로 이 모든 설명을 비밀로 덮어서 도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산대장님꼐 감사드리며 지금은 해냈다는 성취감이 더 큰 행복을 얻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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