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힘차게 날린다.
우리집 안에서 보이는 내가 지정한 나만의 기상대가 있다. 오늘의 날씨는 골프장에 있는 태극기가 힘차게 날리는 정도를 보니 풍속이 초속 4미터 정도가 되고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으면 북서풍이다. 그리고 산이 깨끗하게 보이는 날은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이고 활짝 문을 열고 환기를 마음껏 해도 좋은 날이다. 아침마다 가장 먼저 창을 통해 나의 기상대를 살피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 되었다. 반면에 태극기가 축 처져 있고 산이 뿌옇게 보이는 날은 기분마저 축 처지고 문을 꼭 닫은 채 스스로 먼지 감옥에 갇히고 만다.
연 3일 최악의 미세먼지의 감옥에서 한 발짝도 내놓지 못하다가 3일만에 마치 죄수가 특별외출을 허락받은 날처럼 밝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날 같다. 그래서 쾌청하지는 않지만 보통이라는 말만으로도 긴 호흡을 하면서 친구와 둘이 하남에 있는 검단산으로 갔다. 그곳에 가면 맑은 날이면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고 팔당댐이 가까이 보이는 두물머리에 평화로운 강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잎이 무성할 때보다는 겨울에 한강의 풍경이 더 잘 보이는, 정지의 답답함에서 흐름의 생동감을 보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흐름이 있는 풍경을 본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나에게 기를 불어넣는 활동의 재개를 의미하는 날이기도 하다.
겨울 검단산에는 오랜 가뭄으로 인해 먼지만 푸석이고 빈 몸에 지난가을의 멋쟁이들이 다 쭈글어진 옷을 벗어버리지도 못한 채 거친 강바람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오르는 도중에는 딱히 뭔가를 카메라에 담고 싶은 것도 없고 모두가 깊은 동면에 들었으니 잠이 깨기 전에는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어려운 숲의 식구들이 어떤 유혹도 보내지 않는 단조로움이 그냥 운동이나 하고 가란다. 잠실역 8번 출구에서 30-1 버스를 타고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오른쪽 들머리로 오르는 길은 유길준 선생 가족묘원까지는 공원 산책길이었으니 몇 개의 쉼터를 지나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짧지만 운동이 충분히 될만한 가파른 난코스였다. 정상이 눈에 보이는가 싶어 오르고 보면 더 멀리에 있고 저건가 하고 다가가면 또 더 멀리에 있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법 높은 657미터의 산이었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지나온 푸석한 메마른 마음이 다 날아가고 시원한 흐름이 선명한 네개의 강줄기가 보이는 곳이다. 남한강, 북한강, 두물머리, 팔당댐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풍경이 있지만 먼지를 깨끗이 날려 보내지 못한 대기는 그 멋진 풍경을 흐리고 있어서 무척 아쉬운 날이었다. 정상에서 능선을 더 걷지 않고 바로 산곡초등학교로 내려가는 하산길이어서 하루를 채우기에는 부족했으나 겨울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충분한 길이어서 미련 없이 내려와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니 그것 또한 싫지 않았다. 알고 보면 가까운 경기도에도 갈만한 산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으니 근교 산행의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봉안대교
봉안대교와 팔당댐
검단산에서 보는 강의 풍경,윗쪽 남한강, 왼쪽 북한강, 북한강에 있는 다리는 양수대교,
작은 섬이 있는 곳이 두물머리,아랫쪽 팔당댐이 있고 한강이 흐른다.
운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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