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선자령

반야화 2019. 5. 25. 11:27

 봄의 절정 오월, 선자령으로.......

선자령의 설경을 볼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대신 봄의 절정인 오월에 선자령을 간다. 우리가 살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이 숱하게 많지만 ~~ 싶다 싶다, 하다 보면 그 싶다가 현실로 이루어지는 걸 경험하곤 한다. 이번에도 선자령에 가고 싶다는 노래를 자꾸 불렀더니 드디어 이루어졌다. 비록 눈꽃 산행은 아니었지만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서 눈꽃보다 이쁜 꽃들을 보면서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잠겨본다는 것, 마음밭의 삽짝이 활짝 열리고 이랑마다 선자령의 야생화를 심으며 어떤 호연지기 같은 기운으로 가득 차 버린다. 그렇게 초원의 꽃밭으로 변한 마음 안고 보고 싶었던 그곳에 와 있다는 걸 발자국마다 세기면서 시작한다.

 

선자령 순환로 5.5킬로 정도를 걸어 들어가는데 초입에서부터 더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야생화를 볼지 미리 맛보기로 보여주는 에피타이저 같은 보라색 벌깨덩굴 꽃이 주류를 이루며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선자령에서 본 야생화는 종류도 많다. 보지 못한 꽃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본 것만 해도 "벌깨덩굴, 참 마리, 연영초, 족두리풀, 요강나물, 동의나물, 미나리냉이, 광대수염, 감자난, 피나물, 얼레지, 큰앵초, 은방울,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수많은 꽃들과 대면하는 즐거움으로 오르는데 쉬어가는 고개에서 처음으로 본 연영초를 본 것도 큰 소득이었다. 꽃잎과 꽃받침이 세 개씩 돌려가며 조화를 이룬 순박한 흰색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모습이다.

 

선자령 초입에서부터 잘 가꾸어진 숲길로 들어가다 보니 영웅숲이란 팻말이 있는데, 평창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 실패를 해도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 영웅을 길러내듯이 숲을 길러내어 푸르게 우거질 때까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끝내 성공한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깊이 들어갈수록 숲은 더욱 짙고 빽빽해서 온 몸에 푸르른 숲 욕을 하는 듯했다. 조금씩 높아질수록 선자령의 상징인 풍력발전의 바람개비가 이 날따라 바람이 없어 큰 날개가 한가로이 돌고 있는데 그 바람개비 앞에 서면 마치 사람이 미물만큼 작아져버리는 느낌이지만 거대한 물체를 만들어 낸 인간이야말로 이 세상에 가장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설 때는 다소 먼지낀 날씨 같았으나 숲으로 들어가니 전혀 느끼지 못했고 하늘은 너무 푸르고 맑아서 차라리 구름 한 점 그려 넣고 싶었다. 볕은 이미 초여름을 능가하는 듯했지만 습기 없는 따가움은 땀을 배출하지 않아서 쾌적했고 너무 느긋한 걸음이어서 땀은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순환로 삼분의 일 정도 올라서 맑은 개울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연두색 고운 단풍나무 한 중앙에 거대한 전나무 한 그루가 일대의 기를 다 빨아들여서 홀로 몸체를 키웠는지 아름드리로 우뚝한데 송침은 다른 나무로 가려지고 어쩌면 남의 옷으로 치장을 한 듯 몸은 전나무지만 잎들은 단풍나무 같았다. 그 푸진 그늘 아래서 온 갖가지 찬이 차려지고 한 포대에 다 털어 넣은 즉석 비빔밥은 만찬의 혼합이 되고 맛은 배가 되어서 처음 경험하는 맛이었다.

 

맛있는 점심으로 포만해진 몸은 무게만큼 느려졌으나 야생화를 찾느라 바닥을 보면서 느리게 오르니 힘드는 줄 몰랐다. 느린 걸음이 어느새 정상을 조금 남겨둔 곳에 이르니 선자령 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위에 서니 한눈에 펼쳐진 그림이 너무 좋았다. 전체를 보면 순환로가 길쭉하게 이어져 긴 능선으로 높이를 만들고 그 안쪽에는 분지같이 나직이 숲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천 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그 평원에서는 높이를 느낄 수 없어 트레킹 하는 동안 들판 같은 길을 걷는 듯했다. 선자령의 유명세는 바람이 한몫하는데 바람 없는 선자령은 더욱 여유를 주었지만 전망대에서는 그래도 바람 맛을 조금 보여 주어서 우리는 얼굴 없는 신 같은 바람이 어떤 모습인지 모양으로 만들어 내듯이 모두가 스카프를 날리면서'바람은 이런 모습이다'라는 걸 만들어 보는 재미에 신이 났다. 그렇게 바람을 잡아 보고 올라가니 다 지고 하나 남은 얼레지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았던 꽃잎을 다 펼쳐 보이며 포즈를 취해주어서 귀하게 담아왔다.

 

선자령 정상 아래서 우리는 다같이 선자령을 품 안으로 끌어들여 안아보고 이제 막바지 길을 올라 정상에서 인증을 하고 하산길로 접어드니 아직도 연분홍 철쭉이 초록 바탕 한 귀퉁이에 포인트를 살려내는 물감을 칠한 듯이 생생히 피어 있어서 오월의 절정을 배가시켜 주었다. 하산하는 길에서는 목초지의 풀밭이 또 일품이었다. 소떼나 양 떼가 뛰어놀법한 드넓은 초지에 그들은 간 곳 없어 풀밭에 앉아 있는 여인들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명작 하나를 만들었다. 그런데 하산길도 숲은 오를 때보다 더 좋았고 숲 속에 작은 오솔길이 너무 이쁘게 이어져 있어서 끝까지 그림 속을 누비는 명작 산책이 되어 주었다.

 

준거집단 속에서의 행복, 아무리 좋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보더라도 외롭게 독락하는 것보다 같은 취향을 가진 친구와 함께 공감하는 즐거움이 얼마나 더 행복을 주는지 느낀 하루였다. 나만 그런가, 넓은 해변이나 평원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지, 아마도  시선이 고정되는 초점을 없애고 마음에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裸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두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게 마련인데 대평원에서는 나심이 그대로 드러나서 근심 걱정은 다 날려 보내게 되니까 그러리라, 그래서 여행은 마음을 세탁하는 세제가 되나 보다. 선자령도 그랬어, 난 분명 세심을 얻었어.

 

 

등산로 입구 첫인상

벌깨덩굴꽃

 

참꽃마리

연령초

 

족두리풀 꽃

요강나물 꽃

 

 

 

 

미나리냉이

 

광대수염 꽃

 

감자난

전나무 아래의 만찬

 

 

 

 

 

선자령을 품 안으로....

 

피나물꽃

뒤태도 이쁜 얼레지

큰앵초

바람의 얼굴을 표현

얼레지

 

 

 

 

선자령 정상

 

 

초원의 명작

 

은방울꽃

 

 

 

 

 

 

 

요강나물 꽃

 

 

쥐오줌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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