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란 거, 거기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알록달록한 무지개를 만드는 과정이 있다.
강원도 일대를 수없이 다녔지만 주로 인제와 속초 쪽이었지 양구라는 곳은 처음인 것 같다.딱 한 번 지난 적이 있긴 하다. 어제 알고 보니까 아이들이 어릴 때 서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박 2일로 동생 가족과 함께 깜깜한 밤중에 밤낚시를 한다면서 소양호를 찾아가는데 가로등도 없는 길을 가도 가도 옥수수밭만 나오고 칠흑 같은 어둠이어서 "이러다가 북한 가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했는데 그날 조금만 더 갔으면 북한에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제 최전방을 보고 나니 그날이 떠올라서 속으로 웃었다. 바로 이 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을 다 지나고 소양강로를 따라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어떤 곳을 찾아드는 느낌으로 굽이굽이 휘돌아 높은 산 깊은 골을 지나니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양구 방향으로 금강산로를 따라 45분 정도 들어갔을까, 양구읍과 동면, 남면을 지나니 펀치볼로가 나왔다. 펀치볼로를 거의 다 지날 무렵 드디어 해안면이 나오고 돌산령터널을 3분 정도 지나니 오늘의 행사장에 10시 15분쯤에 도착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날씨는 약간 흐리지만 좋은 편이었다. 원거리가 선명하지 않아서 기대했던 만큼 좋은 영상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나라 국토 남한과 북한의 중간지점이고 남한 쪽에서는 최북단의 땅이다. 그러나 지나면서 군부대가 많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곳은 아닌 것 같았고 디엠지 구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았다. 깊이 들어가는 동안 고립감 같은 느낌은 있었으니 보통의 농촌마을과 다름없는 비닐하우스 농사도 많고 논농사도 많고 강원도의 특색인 감자와 옥수수밭이 많이 보였다. 최전방이지만 군부대가 있으니 왠지 더 믿음직스럽고 안전한 마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양구의 작은 농촌 마을이고 긴장감 같은 거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행사장에서 우선 단체사진을 찍은다음 주의사항을 듣고 나서 11시 정도가 되어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볕이 따가운데 시멘트길로 접어들어서 한참을 가다가 돌산령로에서 오른쪽으로 우회하니 도솔산 옛길이라고 되어 있다. 그 길로 좀 더 들어가나 오유밭길로 올라가는 언덕길이고 숲이 나와서 너무 좋았다. 오유밭길과 만대 벌판 길을 걷는데 숲은 마치 제주도 곶자왈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은 단풍나무, 박달나무 그 외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다래덩굴, 미역 줄 덩굴이 엉그렁덩그렁 어우러져 있고 눅눅한 공기와 고사리류의 식물들이 사는 것이 닮았다. 숲 속에는 꽃은 지고 명패만 남은 식물들의 분포도 비슷한 것이 많았다. 숲이 깊어서 촉촉한 땅에서 올리오는 공기와 나무에서 나오는 공기층 사이를 걷는 것과 같은 상쾌함이 너무 좋아서 그제야 강원도에 있다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상 같은 전망대에서 보는 펀치볼의 분지는 조감도처럼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모양이 거인의 펀치에 움푹 파여서 화채 그릇 같은 지형 전체를 한눈에 보고 싶었으니 우리는 한쪽면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조감도를 보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화채를 만들기 위해서는 맛있는 온갖 과일이 배합이 되어서 달콤한 맛을 만들듯이 해안면 들판에는 온갖 맛있는 농작물이 다 그릇 같은 분지에 담겨 있어서 오늘 우리가 먹을 숲 밥 재료가 화채 같은 맛을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유밭길 트레킹이 끝나고 숲에서 점심을 먹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나물반찬이 차려져 있는데 살펴보니 다 해안면 들판에 오롯이 담겨 자라던 농작물이 다 화채만큼 이쁘게 담겨 있다. 우리가 치른 값에 비해서 너무도 넘치는 주민들의 정성과 수고가 함께 담겨 있어서 감사함을 넘어 죄송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갖가지 찬을 이쁘게 담아서 숲 속에서 먹는 숲 밥이 너무 맛있고 재미있었다.
점심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만대 벌판 길로 트레킹이 시작되었는데 길은 오유밭길과 마찬가지로 곶자왈 같았고 특별한 것은 길을 다 돌고 나오면 만대저수지와 길을 사이에 두고 드넓은 감자밭이 있다는 거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때마침 하얀 감자꽃이 피어서 멀리서 보면 메밀밭 같기도 하고 데이지 꽃밭 같기도 했다. 농사라기보다는 우리에겐 조성된 야생화 천국 같았다. 그렇게 때맞추어 생생한 감자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어쩜 그리도 이쁜지 수선화를 닮기도 한 감자꽃이 들판 가득 피어 장관을 이루어서 그곳에서 아주 행복한 순간에 있었다. 마치 어느 소국 같은, 세상과 뚝 떨어져 외로울만한 나라에 위로하러 가서 더 많은 위로를 받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가보지 못한 땅, 앞으로 더 많이 자유롭게 왕래가 되는 그날이 오길 바라면서 이만큼만이라도 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가장 북쪽 끝에 내 발자국을 남겨놓고 돌아서 나왔다.
도솔산로
개다래 잎, 벌을 유혹하기 이해서 꽃으로 위장했다. 꽃은 잎 아래 너무 작아서
벌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해안면 들판
펀치볼 같은 들판
사람도 꽃이다. 사람도 풍경이다.
정상 같은 전망대
소나무 한 가지 아래 다 들어간 듯한 풍경
숲 속 평상과 돗자리를 깔고 점신을 먹는 장소
산뽕나무에서 건강을 따먹고 있다.
이 길을 지나면 감자밭이 나온다.
만대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