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사나사, 사나계곡
삼복더위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계곡을 찾아 집을 나섰다. 경기도에서 가장 물 좋은 지역인 양평으로 간다. 양평은 여러 번 지나다니던 곳이다. 내가 본 건 주로 양수리 일대였고 그것이 양평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색다른 풍경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산책도 했고 가족 나들이도 했고 늘 아름다운 풍경만 양평의 이미지로 내 맘 속에 들어찬 곳인데 이번에는 양평의 다른 모습을 봤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사는 것이 늘 즐겁다.주 일회 정도로 산행만 하던 내게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 트레킹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산의 정상보다는 그 아래를 걷는 트레킹에 조금씩 즐거움으로 젖어들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산행을 고집하던 이유는 체력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두 가지의 장점을 잘 살려서 즐기다 보면 여생은 거의 자연과의 일체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리적으로 보면 용문면은 경기도에 둘러싸인 서울처럼 양평군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중앙에 용문산과 유명산 등 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흘러 보내준 물의 수량이 남한강으로 흘러들어 아름다운 물의 도시를 만드나 보다. 어쩌다 보니 경기도에 있는 유명산, 용문산을 가지 못했다. 처음으로 용문산 자락에 깃들어 있는 용문사를 보고, 이름도 처음 듣는 사나사를 볼 수 있다기에 무척 큰 개 대감으로 떠났다. 용문사 하면 가장 먼저 은행나무가 떠오른다. 은행나무야 여러 곳에 두루 있는 신목을 본 적이 있지만 용문사를 대표하는 이미지여서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우선 용문사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길부터가 물의 고장이란 걸 보여주듯이 길 한쪽에 맑고 깨끗한 도랑물이 이쁘게 흘러내리는 걸 만난다. 물줄기는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흐르면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이 어느새 깊은 계곡이 되어 있다. 장마가 남겨놓은 계곡물은 끓임없이 흘러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풍요를 느끼게 해 주듯 물가엔 숲의 식구들도 모두가 윤기가 흐른다.
드디어 용문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멀리서도 알 수 있는 은행나무가 보인다.우선 한눈에 보이는 전체의 모습은 좀 특이했다. 나무라면 의례히 아래쪽보다는 위쪽으로 더 풍부한 가지와 잎으로 전체의 조화를 이루기 마련인데 용문사 은행나무는 아래쪽이 더 많은 가지와 잎으로 아주 안정적인 형태다. 좀 더 가까이서 보니 둘레가 14미터나 된다는 몸체에는 커다란 혹이 있다. 천년의 세월 동안에 지켜본 역사의 숱한 한과 오탁악세의 결절들이 뭉쳐서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11000년에서 15000년을 생존하면서 절은 몇 번의 소실이 있었지만 은행나무는 그걸 다 지켜보면서 화마를 면했다 하니 수령을 추정하는 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떤 것이든 그 역사는 천년을 넘었으니 의견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대단한 건 생기가 아직도 너무도 푸른 청년기 같았다. 어느 가지 하나 죽은 거 없어 보이고 싱싱한데 여전히 생산적이다. 그 큰 품 속에는 얼마나 많은 알맹이를 달고 있는지, 그리고 천년이 넘도록 생산해낸 은행알을 다 모았다면 아마도 용문산 높이가 되지 않을까 싶고, 저것이 은행이라고 하는 금융회사였다면, 산더미 같은 알맹이가 돈으로 환산되어 우리나라는 얼마나 강한 부국이었을까 하는 단상에 잠겨보기도 하면서 더 오래오래 사시라고 기도했다.
용문사를 둘러보고 돌아 나와서 사나사롤 가는데 용문면에서 반대방향인 옥천면으로 접어든다. 방향은 달라도 사나사 역시 용문산이다. 이 사찰은 이름도 처음 들었고 처음엔 절이란 것도 몰랐다. 옥천면은 작은 산골마을인데 용문사에서 약 15분 정도 차로 이동한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는 중에는 양평의 산골마을은 강원도만큼 깊은 골짜기였고 산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고 보면 지평선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우리나라는 산은 마치 사람을 지배하는 피라미드 가장 위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마을은 산 아래에 있고, 산 너머에 있고, 산 사이에 있고, 산을 떠나서 살 수 없어서 풍수에도 가장 좋은 터는 "배산임수"라고 하지 않던가, 그뿐 아니라 마을 뒤에 있는 산은 마을을 지켜주는 진산이라고 하면서 산에 의지해서 살고 어떤 신앙이 되기도 하는 사람과 산은 뗄 수 없는 '신토불이, 산인 불이"인 것 같다.
사나사와 용문사는 둘 다 조계종 25교구 본산인 봉선사의 말사다. 시대적으로도 둘 다 고려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대 가람이고 사나사에는 유물도 많이 있는 명찰인데 그동안 찾아보지 못하고 존재도 몰랐다는 것이 불자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같은 산 다른 계곡이지만 하나처럼 닮아 보이는 고찰을 겉만 보고 지나치는 것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사나사에서 잠시 간식을 먹고 유물을 둘러보고 목적지인 계곡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너무 이쁘다. 조용한 시골의 수풀 속으로 나 있는 좁다란 오솔길을 걷는 정감이 절로 절로 미소를 띠게 되고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걷는데 여름철에 만날 수 있는 토종꽃들도 참 많다. 한동안 땀 흘리는 게 싫어서 여름 산행을 피하다 보니 이맘때 피는 참나리를 보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만나니 꽃 이파리를 뒤로 또르르 말고 농밀한 어여쁨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처럼 요염한 참나리의 모습에 흠뻑 빠져 보았다.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한참 걷다가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고 다다른 계곡에는 물이 많을 뿐 아니라 맑고 깨끗해서 공들여 찾아간 보람이 충분했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계곡은 어둡고 한참 있으니 추워서 찾아든 시간에 비해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러나 잠시지만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마시는 따뜻한 커피의 맛이 일품이었다. 위에서 목덜미를 타고 들어가는 따뜻한 커피와 발끝에서 스며 오르는 찬 기운이 만나 섞이면서 아주 이상적인 만남의 온기가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동심의 놀이를 마치고 맛있는 음식까지 잘 먹고 포만감으로 돌아 나오는 마음은 어떤 질곡에서 놓여나는 한결 자유로움과 신선함으로 충만해지는 마음으로 양수로를 건너는데 구름 낀 저녁나절은 또 왜 그렇게 낭만적인지, 남한강 물을 가르면서 지나가는 차창으로 보이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나도 풍경이 되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보고 싶었던 걸 보고 오는 길은 하루라는 시간이 여백도 없이 꽉 차는 완벽한 날이다.
승탑,경기도 유형 뮨 화제 제72호 고려 말기에 사나사를 중창한 원증국사 태고의 묘탑.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유형문화재 제73호 이 탑비는 자연암반을 다듬어 조성했으며 탑비의 비문은 정도전이 짓고 글씨는 재림사 주지였던 선사 훤 문이 썼던 1386년 제자 달실이 건립했다고 기록.
사나사 조사 전
사나사 삼충 석탑, 경기도 문화제 자료 21호
대적광전과 왼쪽에 있는 극락전
사나사 대적광전,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대적광전이라고 하는 것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지 않고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사나사계곡
아래로는 용문사
양평군, 차 안에서...
지장전
관음전
사물(범종, 운 판, 목어, 법고)이 있는 범종루
금향원
용문사 미소 전
용문사 일주문
하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