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딸들하고 봄나들이를 했다.
땅속에서 시작된 봄이 느낌으로만 봄이지, 눈에 보이는 봄은 아닌 것 같다. 아직은 가벼운 겨울 옷 하나쯤은 들고 다녀야 하는 날씨지만 혹독한 추위를 견디어 낸 사람들의 마음속엔 벌써부터 계절적인 그것보다는 새로운 희망 같은 마음이 시작될 때 모두 봄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라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우리 집에서는 북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먼저 일산에 있는 고양 아람누리 전시관에서 프랑스 작가 장 자크 상페의 삽화 전시도 보고 빵과 커피도 마실 수 있는 일석이조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파주 헤이리로 갔다.
헤이리에 예술인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지금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꽃도 잎도 없으니 건축물이 모두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인공적인 구조물은 역시 자연적인 배경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황량하기 마련인지 한눈에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다 보지 못했지만 뭔가 마을의 배치나 환경이 예술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고 구성이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이었다. 아마 꽃피고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라면 이 말이 틀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던 황인용 음악 감상실은 건축가협회 수상작인 건축물인데 문외한인 내가 볼 때는 마치 페인트칠할 형편도 안 되어서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된 것 같은데 그것이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되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속에 울려 퍼지는 클래식 음악의 선률은 콘크리트 벽이 오선지로 보일만큼 마음속 깊이 전율이 흐르는 깊은 감정에 젖어들었고 커피맛도 향기로웠다. 또 어떤 건축물은 돈이 없어 보수도 못 해서 강철에 녹이 쓴 것 같은 산화철 그대로 외벽이 된 것도 있었는데 그것 역시 멋이라니, 일반적인 생각으로 보면 모두가 괴짜 건축물이었다.
마을 한 바퀴를 다 돌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돌아오려는데 차들이 어찌나 많이 모여드는지 서둘러 빠져나오는데 헤이리 보다는 자유로를 타고 오는 길목에서 난 넋을 놓고 감탄하고 있었다. 공릉천이 흘러드는 한강 하구의 드넓은 강물과 석양빛이 내려앉은 금빛 물결들이 나무 좋았다. 마음 같아선 잠시 차에서 내려 바라보며 서 있고 싶은데 철책이 둘러 쳐지고 차를 세울 곳도 없다.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하나도 건질 게 없네. 서울에서 대교를 건너면서 보던 한강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고 건너편 산들의 곡선과 김포의 아련한 도시의 실루엣이 겹쳐져서 더욱 아름다웠는데 거기에 초록색의 갈대 물결까지 더한다면 얼마나 더 멋질까 생각하면서 꼭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스쳐오니 한가로이 철책 안을 나르는 새들이 부럽기도 했다. 언제 그 철책들이 철거되고 사람들이 강변을 걸을 수 있을까?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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