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진안 구봉산

반야화 2015. 12. 2. 12:16

2015년, 첫겨울산행을 시작한다.

부단히 쫓아다니던 사계의 끝자락에 들어서고 보니 올해도 사계의 묘미를 놓치지 않고 그 한가운데에서 내 안에 내가 주인공으로 충분히 잘 지나왔고 앞으로 나머지 겨울 또한 지나온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잘 마무리하는 시간도 역시 산 위에서 할 것 같다.

 

전북 진안하면 먼저 마이산을 떠올리는데 그 외에도 구봉산이 있었고 마이산에 버금가는 멋진 암 벽산이었다. 진안까지 들어가는 동안 모처럼 맑은 아침해를 차창으로 반갑게 맞이하면서 가는데 산굽이 돌아 물을 만나면 짙은 안개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간다. 그것도 하나의 풍경이 되어서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3시간 정도 달려서 구봉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짐 정리를 하고 곧장 가을걷이가 끝나고 서리 맞은 고춧대들이 어설프게 서 있는 양명 마을 들길을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구봉산 초입인데 가을장마에 눈비가 내린 끝이라 오르는 길이 무척 질척였다. 진흙이어서 더욱 미끄럽고 조심스러운 가운데 한참을 오르다 고개를 들면 왼쪽으로 가장 먼저 4봉과 5봉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가 눈길을 끈다. 그리곤 다시 발 밑만 보면서 조심조심 일봉까지 올라가면 그렇게 짙던 안개가 산 위에서 보니 산봉우리 사이사이를 다 메워서 마치 안개바다에 봉우리만 떠 있어 섬같이 보인다. 그 운무를 더 멋진 걸 보기 위해서 질척이는 산길을 열심히 올랐더니 1봉에서 보는 풍경은 푸른 소나무의 채색이 돋보이는 어느 대가의 수묵담채화 같았다.

 

구봉이라, 우리나라는 9라는 숫자에 무척 민감하다.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구봉을 다 넘는다는 것은 이제껏 살아온 인생길을 연상시킨다. 1봉은 들어설 수밖에 없는 정해진 길이고 1봉에서 720미터를 기점으로 점점 고도를 높여가는 험한 인생행로를 걷는 것처럼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인생길처럼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면 더러는 돌아서서 아름다운 풍경에 내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을 보듯이 잠시 머물기도 하지만 8봉에서 9봉으로 오르는 길은 살면서 가장 힘든 40~50고개를 넘는 듯하다. 로프를 잡아도 한 발 잘 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버릴 것 같은 아찔한 길을 있는 힘을 다 쏟아 발을 진흙에 밀착시키고 한 손은 스틱에 의지하고 또 한 손은 로프에 의지하면서 오르는데 다리는 후둘거리고 마음은 잔뜩 겁을 먹은 필사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해서 9고개를 다 넘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아홉수를 무난히 넘으면 나머지 10년은 아무 탈 없이 사는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아홉 고개를 다 넘었다. 그 힘든 고개 9봉, 장군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힘들었던 인생길에서 "내가 어떻게 저 힘든 고개를 다 넘어왔는가""이제는 다 넘었으니 평판한 여생만 남았겠지" 하는 마치 나의 내면과 마주하는 행로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하산길은 나머지 여생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길처럼 편한 마음으로 무난하게 하산해서 다른 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무심코 11달을 지나다가 마지막 한 달 12월 첫날에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고 마무리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뜻있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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