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둔병재-안양산-백마능선-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머리재-증심사.
12월이 이렇게 따스했던 기억이 없다. 자연도 그 다움에 있을 때가 본모습인데 올겨울은 가장 추워야 할 시기가 겨울이란 본본을 잊은 것 같다. 작년만 해도 산행기록을 보면 거의가 설경인데 올해는 헐벗은 산경을 봄이 오기 전의 모습 같은 산을 본다. 처음으로 광주 무등산을 가는데 날씨조차 꾸물거려 기대에 못 미칠 것 같은 마음으로 떠난다. 정해진 날짜에 길을 떠난다는 것은 오직 그날의 일진에 맡길 수밖에 없으니 그냥 가보는 거다.
둔병제에서 출발하는데 안양산까지 오르는 길이 낙엽 속에 감추어진 진흙이 처음부터 힘을 빼는 길이지만 숲으로 들어서는 순간 촉촉한 땅에서 뿜어내는 그 향긋한 공기는 청량제를 들이켠듯한 상쾌함이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풋풋한 산 공기를 들이켜고 나니 도시의 미세먼지에 오염된 폐포가 다 정화가 되는 것 같은 맑은 마음으로 안양산까지 올랐지만 보이는 풍경은 사방이 흐릿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안양산을 넘으니 백마능선이 길게 뻗어 있고 능선 들머리부터는 온통 진달래밭이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장불재 아래는 또 가을이 다녀간 흔적이 그대로 남은듯한 억새밭이다.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이생뿐 아니라 전생의 경험까지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의식을 한 뻔 깨우면 봄이 아니어도 봄을 보고 꽃이 없어도 꽃을 보는 연상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영역이다. 나는 무둥산에서 사계절을 본다. 일행들과 거리를 떨어져 앞서 보내고 뒤쳐져오는 사람들 중간에서 혼자서 백마능선을 걸었다. 하늘은 점차 푸른 바탕을 조금씩 들어내고 기온은 따스하고 양쪽으로 키를 넘는 진달래 군락을 보면서 잠든 봄을 본다. 그리고 그 빈 가지에서 아직 봉긋한 겨울눈도 만들지 못했지만 난 어느새 진달래와 만나고 있는 듯했다. 그 길이 얼마나 한가롭고 평화로운지 움츠렸던 마음에서 서정적인 생동감이 되살아나 유유자적 사유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면 무성했던 억새밭에서 가을도 만나다. 잠든 계절을 쓰다듬으면서 혼자 걷는 동안 언제나 그렇듯 자연에서 행복을 만나 내 안으로 스미면 내 생활의 행복으로 지속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장불재 쉼터에서 점심을 먹는데 땀 흘리며 걷던 몸에서 갑자기 불어닥친 겨울바람에 몸이 식으면서 매서운 겨울이 거기에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산봉우리는 검은 구름에 쌓이고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았다. 눈이라도 오면 금상첨화가 되겠지만 끝내 눈도 오지 않고 큰 기대를 저버리는 짙은 안개구름을 몰고 왔다. 입석대에서는 다행히 제대로 그 장관을 볼 수 있었으니 서석대 전망대에서는 어느 것이 서석대 인지도 모른 채 내려와야 했다 왜 그런지 명산에 처음으로 갔을 때 한꺼번에 완벽하게 보일 때가 무척 드물었다. 오늘도 몇 번 더 다녀가라는 것이겠지 하면서 아쉬운 채로 내려왔다. 그러나 서석대도 입석대와 같은 주성 절리의 다른 모습일 거란 생각을 하고 오는데 무등산은 입석대와 서석대 외에도 비슷한 절리 된 바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바다에서 보는 주상절리는 오각형인데 이곳의 절리는 사격형인 것이 다른 점이다.
무등산은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뜻도 있다고 하는데 참으로 귀 이한 형상 앞에 서면 압도되는 그 모습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풍경을 어느 산과 비교해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천만 년 전의 형상과 마주하며 나와 이 주상절리의 형성시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다른 생이 지나갔을까를 생각하면 그 숫한 세월 뒤에 나 또한 이렇게 서서 세월의 끈을 잡고 있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비록 완벽한 산경은 못 봤지만 다음에는 무엇을 봐야 할지를 유추할 수 있는 숙제를 안고 그리움의 대상을 만들어 왔다. 난 무등산에서 진달래와 입석대, 서석대의 설경을 봐야겠어, 그리움은 평행선도 만나게 해 줄 수 있어. 난 그렇게 믿으니까. 하산을 마치고 무등산 입구로 내려오면 거기는 아직도 가을의 여운에 단풍이 붉은데 어느새 동백은 꽃잎을 활짝 열고 붉은 미소로 탐스럽다.
안양상 넘어 진달래밭
낙타봉
능선 암
장불재에 빛이 든다.
입석대
승천 암에서 본 봄의 무등산 그림(표지판)
서석대 설경 그림(표지판)
전 망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중부
증심사
증심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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