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2일
우중에 걷는 9코스, 비가 몸을 적실지라도 우의 하나 걸치면 그만이지 마음까지야 적시겠나, 그런 마음으로 나선다. 한 일주일 정도 제주에 머무르면 일정 중에 꼭 한 번씩은 비 오는 날이 있다. 올레 사이트를 통해 함께 걷기를 했을 때의 재미도 있었지만 날짜가 맞지 않으면 코스를 골라서 가게 되는데 9코스가 난이도는 상이라고 하지만 늘 산행을 하는 우리에겐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고 대신 비 온다는 예보가 있지만 7.5 킬로면 금방 끝날 것 같은 짧은 코스여서 택했다.
몇 년 전에 딸하고 카멜리아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쁜 카페를 찾아 들어간 곳이 박수기정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던 그곳이 지금 보니 대평포구였던 것 같다. 그날 바라보이던 박수기정이 얼마나 멋있게 보이던지 거기 올레길이 있다는 건 몰랐고 "아, 저기 올라가면 어떨까"그렇게만 생각했는데 9코스에 박수기정이 들어 있어서 참 반가웠다. 자꾸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드디어 그곳에 간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점 찾기가 난제다.버스에서 내렸을 때부터 표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찾는 재미를 준다지만 어떤 때는 그 찾는 재미가 과해서 힘들 때도 있다. 어렵게 시작점을 찾아갔더니 박수기정이 보였다. 기분 좋게 다가가는데 비 오는 날의 바닷가가 선명할 리가 없다. 기억 속의 선명하고 멋지던 곳이 흐릿해서 너무 아쉬웠다. 그러나 그 위의 풍경이 기대가 되어서 얼른 흐린 마음을 떨쳐버리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올랐더니 넓은 평원에 푸른 초원 같은 밭도 있고 수풀이 무성한 절벽 끝에 좁다란 길이 참 이뻤다. 그 넓은 초원에 풀을 뜯으며 뛰놀던 말들이 있는 그림을 연상하면서 재미있게 걸었다.
보리수나무 길, 월라봉을 걸으면서 전망대를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산방산을 바라보면서 걷는데 비가 점점 많이 와서 옷은 땀으로 젖고 신이며 양말까지 다 젖어서 그때부터는 젖는구나 하는 마음도 없이 마냥 걸었다. 제주의 풍경이 좋고 확 트인 곳에는 일본군의 진지가 꼭 있다. 월라봉에도 굴 속을 들여다 보기 무서울 정도로 깊은 동굴 같은 것이 많았고 아마도 그것들이 내부로는 다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위치가 같은 걸 부면 내부가 이어져 있을 것 같았다.
리본을 놓치고 가던 길을 되돌아 오기도 하면서 산을 다 돌아 내려오면 황개천이 나오는데 그 모양이 꼭 쇠소깍을 닮았다. 카약을 탈 수 있다는 물놀이까지 쇠소깍과 비슷해서 착각할 정도로 물이 많았다. 강둑에는 처음 보는 게가 있는데 집게발이 무척 굵고 특이해서 이쁘게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싫다며 나무 등 궐 속으로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무서워 보였나 보다. 이제 남은 볼거리는 화순 금모래 해변이다. 산방산에 갔을 때 보지 못한 거면 그 반대편이 아닐까 생각된다.
비가 오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먹는 재미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점심먹을 자리도 없고 차 마실 자리도 없다.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참고 좀 더 걸으면 황개천을 지나 대로로 나가면 길가에 쉼터인 정자가 있어서 거기서 김밥을 먹고 대로를 따라 앞으로 가면 해양경찰서를 지나 화순 해변이 나온다. 금모래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더니 모래는 검지만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날 것 같은 모래 알갱이가 있어서 금모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제 코스는 끝났고 제주행 버스를 타야 되는데 길을 물어서 화순 사거리로 올라 가는 도중 놀라울 정도의 깨끗하고 이쁜 공동 빨래터가 있어서 맛을 봤더니 틀림없는 민물이었다. 수면은 땅 높이와 같은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찰랑거리는 물이 어떻게 마을 가운데 있으며 옛날 것이 아직도 보존되고 사용한다는 것이 화순리 주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아래는 가정집이 있는데 비가 많이 와도 집으로 물이 들어갈 염려는 없다고 하니 보배로운 빨래터 같았다. 내 집 앞에 그런 빨래터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하면서 만져도 보고 맑아서 비쳐도 보고 잠시 비 맞으며 걸었던 흐린 마음까지 맑게 씻겨나가는 기분이 되었다. 9코스는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많고 들판을 지나지 않는 유일한 곳이다. 그리고 좋은 날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박수기정
절벽 위 초원
허수아비
절벽 위에 있는 기장밭
삼방산이 보인다.
월라봉 아래 초지
산기슭 초원에 이쁜 패랭이
어디에 살까? 만물게일까? 바다게일까?
황개천
화순 금모래해변
공동 빨래터 맑고 깨끗하게 잘 지키고 있는 주민들.
2017년 9월 25일 두 번째 투어 사진
으아리와 싸리꽃이 어우러져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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