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6일
제주올레 4일째 오늘은 4코스를 간다.
어제 기분 좋게 마무리한 표선 바다로 다시 가서 당케포구에서 시작해서 남원 표구에서 끝나는 26개의 올레길 중에서 최 장거리인 23.1킬로미터의 대 장정이 예고된 길이다. 그동안에 짧고 경치 좋은 곳만 골라서 먼저 걸었더니 이제 남은 건 길고 힘든 코스만 남겨둬서 올레 완주를 위해선 힘들어도 빼놓을 수 없는 길을 하필이면 가장 뜨거운 날 그 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오늘도 날은 무덥고 구름 한 점도 없다. 그러나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는 순간 맑은 하늘을 보면 무척 기분이 좋은데 그게 너무 잠깐이고 곧 뜨거워지는 제주의 여름이다. 오늘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표선행 730번을 타고 가는데 시가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넓게 펼쳐진 숲의 바다로 버스가 마치 그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것 같은 길로 간다.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제주의 길이다. 길가에 가로수가 전부인 도시에 비하면 가로수 대신에 숲 속에 만들어 놓은 제주의 길은 내리지 않고 차만 타고 가도 기분이 너무 좋다.
표선에 도착하니 어제의 북적이던 인파들은 어디로 가고 한산하고 조용한 맑은 바다에 파도만이 바다의 주인인양 철썩이며 놀고 있다. 이제 곧 어제 같은 인파들이 모여들겠지, 일행들이 다 모이고 당케포구에서 출발하면 바로 갯늪(바다 늪)을 지나는데 바닷가에 풀이 자라는 넓은 자갈밭이다. 현무암 자갈이 깔려 있고 물이 차면 우회해서 가야 하는 길을 걸어서 계속 해변길을 간다. 이 코스는 반이 바다올레다. 뜨거운 빛을 온전히 다 받으면서 어디 내 몸 하나 감출 곳이 없다. 몇 킬로를 걷다 보면 해양수산연구원이 나오고 거기서 잠깐 둘러보고 땀도 식혀서 다시 바닷길을 간다.
바닷길을 쭉 지나가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곳은 35년만에 복원되었다는 `가는 개` 숲터널인데 덩굴들이 얽혀서 빛도 잘 안 들어오는 오솔길이 길게 이어지는데 난 그 길이 참 좋았다.
가는 개, 해병대길, 토산 산책로를 다 지나야 바다를 등지고 망오름을 향해 가는 길이 나온다. 딱 반 정도를 해안가 도로와 절벽 숲길을 지나는 지점에 남쪽나라 횟집이 있어서 거기서 시원한 물회를 먹고 쉬어서 가는 길은 망오름 입구의 널찍한 아스팔트 길이다. 그렇게 헐떡이며 망오름에 오르면 넓은 들판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이고 조금 내려가면 나무 울타리를 쳐 놓은 무덤이 있는데 그것이 말무덤이라고 한다. 어떤 말이기에 커다란 무덤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런 표적이 없다 그러나 예사말은 아닐 것 같고 아마도 어승생에서 태어난 임금을 위한 말이 아니었을까도 생각되었다. 말무덤 아래는 그늘 좋은 쉼터가 있어서 각자 가져온 간식을 나누어 먹고 쉬어서 영천사 쪽으로 내려간다.
영천사로 가는 길에는 축대를 쌓아 놓은 물 웅덩이도 있고 거슨세미라는 표지석이 있다. 거슨세미 용천수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고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보전상태가 좋았던 곳으로, 최근 보존상태가 악화되면서 주민들의 우려를 샀던 곳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샘물은 바다 방향으로 흐르지만 이 오름의 샘물은 한라산 방향으로 거슬러 흐르고 있어서 거슨세미의 거슨은 ‘거슬다’라는 의미를 가졌고 세미는 샘을 뜻하므로 거슨세미 또는 샘 오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하니 마치 차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제주 신비의 도로 같은 곳이다.
영천사는 길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전각 아래 정자에서 잠시 쉬어갔다.정자에서 위쪽으로 쳐다보면 불이문이 있다. 불이(不二)란 뜻은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세속과 부처의 세계가 둘이 아니며, 선악(善惡), 유무(有無), 깨끗함과 더러움, 등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이 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신토불이도 마찬가지로 내 몸과 땅이 둘이 아니고 땅이 있어야 그 땅에서 나는 양식으로 내가 사니까 신토가 어찌 둘이겠는가!
영천사를 지나서 삼석교는 우회해서 간다.잠시 들판과 수풀 길을 걷다 보면 벌 포연대를 지나 바닷가 자갈길을 한참 지나면 오늘의 끝 지점인 남원포구에서 스탬프를 찍고 서로 수고했음을 인사하고 헤어졌다.
길고 긴 4코스를 마치고 나니까 큰 걸 뭐 하나 해낸 것 같아서 홀가분함마저 들었다. 며칠을 연거푸 했으니까 내일 하루는 쉬어야겠다.
당케포구의 검은 현무암 자갈밭.
해양수산 연구원에서
이쁜 게스트하우스
가는개 산책로의 숲터널.
망오름에서 보는 풍경
말부덤, 이렇게 큰 말의 무덤이라면 특별한 무덤일 것 같다.
거슨세미는 지형으로 보면 높은 곳인데 물이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곳이라 한다.
영천사 정원의 정자
벌 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