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우이령길

반야화 2023. 3. 8. 20:06

땅 속에서 뭇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삼월 중순에 그들을 이제는 깨워도 될 것 같아 발자국소리 크게 내면서 산을 가로지르는 우이령길을 걷는다. 언 땅도 녹고 언 마음도 녹아 길을 가기에 너무 좋은 새봄이다. 산속 음지 골짜기에는 아직 얼음이 있지만 길 옆 조팝나무는 아주 작은 이슬방울 같은 싹을 내밀고 나무의 겨울눈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 너무 이쁘다.

2009년 통제되었던 우이령길이 열리지 마자 찾아갔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4년이 흘렀으니, 그때는 마치 신작로를 고르기 위해 모래를 뿌려 새길을 내는 듯했는데 지금은 길 옆 주류를 이루는 국수나무와 잡목들이 자라면서 산길다운 모습이고 길은 다져져서 맨발로 걷게에도 좋아 보였다. 걷다 보니 우이동에서 들어갈 때는 몇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만한 넓은 산길이다가 석굴암을 지나면서부터는 사찰을 찾는 차들이 다니는 찻길이어서 호젓한 산길의 모습은 반정도만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우이령길은 오봉과 동행하는 길이다. 초입에서 중간정도 걷다 보면 멀리서도 보이는 잘 생긴 다섯 봉우리가 오른쪽에서 우리와 함께 걷듯이 보인다 마치 달이 나를 따라오듯이. 그만큼 거대해서 길을 걷는 내내 함께 있다는 점이 좋아서 그 길을 다시 찾게 한다. 또 한 가지 볼거리는 석굴암인데 우이령 길 삼분의 일정도 거리에서 오른쪽으로 500미터를 올라가면 멀리서 보이던 관음봉 아래 멋진 터전을 잡고 있다. 길이 가팔라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꼭 한 번은 가보라고 하고 싶다. 가서 보면 잘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치가 높아 조망도 좋고 소나무 또한 볼만하다.

내가 처음 갔던 우이령 석굴암의 모습은 이름 없는 작은 산사여서 특별한 기억 없이 석굴이 있구나 하고 별 관심도 없었고 그때는 가파르다는 생각도 었었다. 그만큼 그 정도의 오르막은 힘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제는 이렇게 높았나 생각될 정도로 여름에는 오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천년고찰의 흔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증축을 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터가 넓어졌고 전각도 많고 너무 달라져 있었다. 아직도 공사는 진행 중이다. 석굴암만 가는 신도들은 교현리 쪽으로 차로 올라가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보였다.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된다. 길이든 풍경이든, 주된 길보다는 접근거리가 더 긴 것 같아서 6.8킬로만 믿고 가면 착각이다. 다 걷고 보니 최종거리는 12.6킬로, 약 4시간 정도 걸었다. 이제 봄마중을 했으니 봄이 흘러드는 곳 어디라도 따라가야겠다.

저 많은 봉우리에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지도를 얼른 보면 마치 아파트단지를 표시해 놓은 것 같다. 육모정고개와 우이령이 연결된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도봉산이라 하고 왼쪽은 북한산이라고 하지만 하나의 북한산 국립공원이다.

우이탐방지원센터에서 교현 탐방지원센터까지 6.8킬로이며 약 두 시간정도의 거리다. 그러나 탐방센터까지 접근하는 길이 우이령길과 맞먹는다.

석굴암 일주문 아래 놓여있는 네 마리의 해태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사찰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라 무슨 상징인지 모르지만 하나의 통대리석으로 다리와 형상을 만든 것이 특이하고 솜씨 좋은 석물인 것 같다.

오봉의 다섯 번째 봉우리와 관음봉 사이에 앉은 삼성각

나한전, 석굴 안인데 무척 넓고 쾌적하다. 큰 바위 지붕 아래 고요히 앉아 있으면 내면과 마주할 수 있을까.

석굴암 가는 길

오랜만에 복수초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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