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보고싶으면 봐야지

반야화 2024. 8. 17. 09:41

유례없는 더위에 복자부동만 하고 있으면 제철에 봐야 하는 것들을 못 보고 놓치게 된다. 그래서 떠난 여행길,  더위에 몸을 적시며  잠재된 지난겨울의 설경을 꺼내어 대비되는 마음으로 눈 내리던 혹한을 떠올리며 태양에 맞서 경주를 거쳐 부산까지 갔다.

경주남산에서 먼저 부모님 산소에 인사드리고 단정하게 다듬어드린 다음,  보라색 바탕색에 굴곡이 멋이 된 소나무를 보기 위해 황성공원으로 달려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공원에는 고목의 울창한 숲이 불줄기 같은 빛을 차단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 들어가니 보라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린 것이 꽃인데 하필이면 이렇게 뜨거울 때 피어서 나를 불러내는지......

지난해 경주 황성공원에서 봤던 맥문동꽃과 유엔공원에서 보았던 배롱나무를 만나기 위해 경주와 부산으로  갔는데 같은 날자인데도 올해는 맥문동이 많이 져버리고 잎만 무성한 채 앞부분에만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에 부산 시립문화회관에 공연을 보러 가서 이른 시간을 이용해 그 아래 있는 유엔공원에 갔었는데 몸체 하나에 꽃도 없는 빈 가지가 꼬불꼬불하게 옆으로 퍼져나가면서 동그랗게 수형을 잡아나간 것이 얼마나 멋지던지 "저기에 꽃이 달리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마음으로 꽃을 매달아 놓고 왔다. 내일이면 그때 그 자리에 꽃 보러 간다. 지금이 적기인데 상상으로 매달아둔 나무는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다.

어떤 여행지가 너무 좋아서 다시 그곳에 철에 맞게 간다는 것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내가 다시 찾아가  마음으로 달아두었던 그 배롱나무에 실제로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모습을 보리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경주 간 김에 부산까지 내달아서 기어이 유엔공원의 고운 꽃을 보고 왔다. 배롱나무는 옛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다. 겉과 속이 같은 나무를 사랑방 옆에 심어 두고 표리부동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키우던 꽃이어서 고택 기와지붕과 어울려 있으면 더욱 운치 있는 풍경인데 기와지붕은 옆에 없지만 공원에 있는 배롱나무는 그 자체만으로도 초록 잔디와 무척 잘 어울렸다.

보라색 바탕에 멋진 자태의 소나무가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며 맥문동과 조화롭게  자연의 작품을 만들어두고 있었다.

공원에는 한쪽 사잇길에 황토를 넣어서 맨발 걷기 하는 길을 제법 길게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도 한바뀌 돌아봤더니 감촉도 좋고 그늘이어서 더욱 좋았다.

경주남산,  포석정에서 올라가는 입구에는 이튿날 볼 배롱나무꽃이 지금이 적기라는 걸 알려주듯이 려러가지 색상으로 맛보기로 보여주는 듯이 줄지어 서 있다.

금오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원경과 들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몸은 힘들어도 맑고 투명한 여름산이 참 좋다.

유엔공원 잔디밭에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배롱나무가 다른 어느 곳보다 더 꽃이 싱싱하고 많이 피었다. 키 작은 몸체에 수많은 가지를 펼치고 아름다운 수형을 만들어낸 꽃이 너무 이쁘다.

꽃과 구름, 이것이 꽃구름이지.

나무 밑에서 들여다본 매끈한 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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