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겪어온 "힘들어"라고 하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져서 지금 겪고 있는 것에 가장,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된다. 해마다 겪는 더위도 그렇다. 지난해도 삼복더위는 넘어가기 힘든 고개였지만 지금은 올여름이 가장 덥다고 느껴진다. 점점 더 체력적으로 적응력이 약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사계절을 날씨 같은 건 아무 문제도 안되던 시간들도 있었다. 삼복더위에도 얼음물을 몸속으로 들어부우면서 산행을 즐겼고 땀으로 옷이 다 젖으면 바람과 만났을 때 시원해서 더 좋다고 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싫어진다. 땀에 젖어 달라붙는 옷도 싫고 힘들게 오르는 것도 싫다.
평소에 아무 느낌 없이 당연하던 것들에 대해서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것들이 참 많다. 바로 가전제품들이다. 누구나 다 쓰고 있는 물건들이 그냥 편리한 줄만 알았지 물건들에 대해서 고마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에 이 편리한 물건들이 없다고 생각해 보면 금방 물건들의 존재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들게 된다. 열거해 보면, 가장 먼저 에어컨이 없었으면 이 더위를 무슨 수로 견딜 수 있을까. 방마다 천장에 붙어 있는 시스템에어컨을 낮시간에는 내방에만 켜놓고 강아지와 둘이 시원하게 책을 보면서 피서를 하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거실을 미리 식혀놓는다. 그러면 집안에 들어서지 마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너무 좋다.라고 하며 심호흡을 한다.
두 번째로 고마운 건 세탁기와 건조기다. 이것들이 없으면 이 더운 날씨에 어떻게 어디서 빨래를 하고 이 습한 날씨에 어떻게 빨래를 말릴 수 있을까로 생각하면 너무 고마운 물건이다. 청소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넓은 공간을 청소기가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 외에도 자잘한 소형가전들이 내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어떤 일을 시켜도 불만 없이 척척 일을 도와주는 가전제품들에 문득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다. 더 들어가면 제품을 만들어준 사람들과 그 기술에도 감사한다. 어떤 이들의 직업적인 것에서 벗어나 편리한 물건들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이라고 생각하면 그들 또한 얼마나 감사한 사람들인가.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면 살아가는 것이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느끼게 해 주는 무더위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