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바쁘게 자나 온 시간을 돌아보니 벌써 하지다. 어제 처음으로 산행 중에 여름이라는 걸 느꼈다. 뜨거운 열기와 모자 밑으로 땀방울들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게 간지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제부터 얼음물을 내 몸 입구로 마구 쏟아부어야 하는 그때가 온 것이다. 이번 산행을 결정하게 된 건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꽂히게 만드는 라벤더 팜을 본다는 말에 확 끌렸다. 보라색 들판 같은 꽃단지와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북설악이라는 애메한 명칭이 맘에 걸리는 곳이다. 설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빼어난 봉우리와 천하일품의 산경이 연상되는 곳인데 이곳은 설악의 잘난 봉우리를 하나도 갖지 못했고 설악의 명성에 끼지 못하는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 줄기다. 그래서 어떤 목표 지점을 찾아간다기보다는 미리 본 사진 속 장면들이 보고 싶어서다. 막상 올라보니 특별한 조망권을 자랑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산에서 유명한 수바 위의 전설과 화암사가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차라리 화암사 뒷산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듯도 했다. 수바 위 입구로 5분 정도 급경사를 오르고 나면 수바 위 바로 밑에 이르는데 바위라고 하기엔 너무 큰 산만한 곳이어서 그것이 수바 위라는 걸 모른 채 조금 올라서 멀리에 보이는 울산바위의 흐릿한 모습을 찍고 내려왔는데 내가 발 디딘 곳이 바로 수바 위였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수바 위를 지나 한참 오르면서 높은 곳에서 뒤돌아보니 한눈에 수바 위가 들어온다. 숫한 전설을 간작한 거대한 바위다.
일주문에는 화엄사로,다른 표지판에는 화암사로 표기된 절이다. 어느 게 맞는지는 몰라도 화엄은 불교 대승경전 화엄경을 말하는 것이고, 화암은 벼화자를 써서 화암사로 표기한 것 같다. 전설을 보면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769년에 창건했는데 그 후 수차례 불이 났다고 한다. 절 위쪽에 지금의 수바 위인 화암, 火자가 들어간 화암이란 이름 때문에 불이 자주 불이 난다고 해서 화암을 수바 위로 바꾸어 불렀다. 수바 위 정수리에 물 웅덩이가 있어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도 있고 다른 주장은 바위의 모습이 빼어나다고 해서 빼어날 수자를 써서 현재는 수바 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외에도 벼가 들어간 전설이 더 있다.수바위를 거적으로 둘러치고 볏가리처럼 보이게 해서 적을 물리쳤다는 것과 바위 구멍에서 벼, 즉 쌀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으니 어느 것이든 전설이란 다 미화된 측면이 있으니 좋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 산 신선대를 지나 넓은 바위광장에 서면 사방의 조망이 너무 좋다. 미시령 고갯길이 다 보이고 달마봉과 다른 기암들의 볼거리가 많다. 특히 울산바위를 이렇게 잘 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랑하는 님을 차마 바로 쳐다볼 수 없어 먼발치에서 마음껏 보고 있는 것 같은 그 위치다. 그 잘생긴 얼굴을 만지지 못하고 먼 듯 가까이서 우리는 울산바위님께 재롱을 부리 듯 울산바위 먼발치에서 교태스러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더 밑으로 내려가면 낭떠러지 바로 위에 온갖 형상으로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개구리를 키우는 바위도 있다. 하트도 있고 잠자리 눈, 또는 선글라스 같은 모양도 있다.
짧고 낮은 산이어서 지치지 않고도 좋은 경치에 풍덩 빠져보는 경험을 한 다음 화암사로 하산했다.여러차례 화마를 겪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절터를 보니 종루에서 보면 수바 위가 쌀을 보내줄 것 같고 날이 가문데도 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도 있다. 반듯하고 넓은 마당을 갖춘 안정된 절터에서 중생들의 성불이 이루어질 것 같은 유서 깊은 절을 찾아 삼배를 올릴 수 있어서 산행한 보람을 느꼈다.
화암사를 돌아나와서 오늘의 일정에 포함된 고성군 간성읍 어천리에 있는 하늬 라벤더 팜으로 갔다. 축제가 끝난 꽃은 이미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시들고 있어 꽃이라도 싱싱함을 잃으면 그냥 풀이더라.그래도 향기는 지니고 있는지 농장에 들어가면 제품으로 만들어진 꽃의 변신에서 향이 진동한다. 좋은 향도 취할 정도가 되니까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살폿한 향이 역시 좋아. 그것이 처녀의 향기 기도 하고 꽃으로 불리는 청춘의 향기 기도하다. 그런 향기가 있었던 내가 이제는 그 향기가 그리워 꽃을 찾는다.
수바 위 바로 앞에서 찍은 것. 바위가 너무 커서 가까이서는 다 넣을 수가 없다.
이 산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전설이 있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면 수바위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바 위는 화암사보다 더 유명한 것 같다. 특히 벼에 대한 전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수바 위에 거적을 둘러치고 볏가리처럼 보이게 해서 적을 물리쳤다는 것과 처음에 수바 위를 禾岩이라고 했다가 불이 자주 나서 수바 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바 위의 유래도 두 가지다. 바위 위 웅덩이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이 물을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지냈다 해서 물수자를 쓰기도 하고 바위의 모습이 빼어 났다 해서 秀바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바위의 규모가 작은 산만큼이나 크다.
수바위에서 바라보이는 울산바위
퍼즐바위
신선대
낙타봉
부처님의 고행상
라벤더 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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