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정선 석병산

반야화 2017. 5. 31. 11:34

오월을 배웅하는 날이다.

밑에서부터 꽃무리를 몰고 오월이 지나왔던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리라. 이제 숫한 사람들의 마음에 추억을 심어놓고 정선이라는 깊고 깊은 곳에서 연분홍 해당화와 산조 팝 나무 꽃들을 이쁘게 그려놓고 훌쩍 떠나려나보다. 그동안 오월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는데 간다니 잡을 수도 없고 배웅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골 깊은 정선으로 쑥 들어갔다. 6월은 꽃들을 보냈지만 신록이 가장 무성한 달이어서 짙은 녹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심신에 푸른 물이 들도록 푹 잠겨 있으면 그 또한 겨울에 쓸 내 몸의 에너지가 되어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동안 백두대간의 구간을 끊어서 산행한 곳을 이어놓으면 백두대간 종주에 버금가는 길이가 될 것 같은데 산꾼들에게는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얄팍한 소리다. 오늘도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정선 석병산으로 간다.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졌다는 유래가 있는 곳이다. 삽당령 고개에서 하차해서 왼편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무심한 세월에 흙은 다 쓸려나가고 통나무만 겨우 가시처럼 걸쳐져 있어 딛고 오르는 길에서 땀을 많이 뺐다. 통나무 계단 두 구간을 오르고 나면 산죽 사이로 난 좁다란 오솔길이 두리봉까지 이어진다. 켜켜이 쌓인 부엽토가 스펀지 같아서 힘들게 올라온 다리가 편안해지는 길이다.

 

두리봉에 올랐다.그 흔한 표지석 하나 세워둘 자격도 얻지 못했는지 보기에도 그저 평범했다. 누군가 명패라도 달아주고 싶었는지 나뭇가지에다가 두리봉이라고 써서 걸어놓았다. 멋진 봉우리는 여지없이 돌에다가 떡하니 이름을 새겨서 표지석을 선물 받는데 두리봉처럼 밋밋한 곳은 잘난 체를 할 수 없는 곳으로 보였다. 잘났지만 뾰족한 심성 같은 봉우리는 품을 주지 않는다. 그런 거에 비하면 두리봉은 잘나지 못해서 넉넉한 성품으로 우리에게 널찍하게 점심 먹을 수 있는 품을 내주어서 거기서 일행은 점심을 편하게 먹고 다시 오솔길을 걸어간다. 어디에 무엇이 있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육산 길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석병산의 진수를 찾아가는데 산죽길은 끊어지고 개다리 순들이 한창 자라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순들이 누군가 손잡아달라는 듯 하늘을 향해 덩굴손을 휘 젖고 있다. 무엇이든 그 손에 걸리면 휘감고 올라갈 참인데 주위에 다른 나무가 없으니 아마도 개다래들은 서로가 뒤엉켜 손잡아주면서 어디론가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찾아갈 것이다. 이렇게 식물들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을 관찰하면서 길을 걷는 것도 참 재미있다.

 

드디어 울창한 숲 사이로 아무것도 볼거리가 없던 육산에 엄청난 암석이 보인다. 저것이구나 하면서 잠시 오르니 먼저 일월문이라고 하는 바위에 구멍이 뻥 뚫려있는 곳이 있다. 아마도 시간을 잘 맞추어 찾아가면 저 구멍 속으로 해가 차오르는 장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월문 위에 오르면 건너에 일월봉이라고 부르는 석병산이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난 몸체에 절벽을 이루면서 "나야 나"하면서 서 있다. 먼저 너무 멋지고 잘생긴 정수리에 왕관 같은 아우라의 해를 이고 서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래서 일월봉이라고 명명했을 것 같은 이미지다. 이 산에는 볼거리가 오직 이거 하나다. 그러나 2등짜리 수십 개를 본들 이만한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일 등짜리 하나를 능가할 수 있는 산이 있을까 싶었다. 마음 같아선 이 봉우리에서 해 뜨는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일월봉 거대한 가슴에 콕 박아놓고 바라본다. 건너편에서 보면 신들의 처소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니 오를 수 있는 틈을 내주고 있어서 석병산 산신님은 마음씨도 착하구나 하면서도 난 정수리까지는 오르지 않았다. 산행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딸이 한 마디 한다."엄마, 조심해야 돼" 난 아직도 엄마가 필요해라고 하던 말도 떠오르고 마침 바람까지 불어와서 그곳에 서면 휘청일 것 같아서 다른 사람 인증사진만 찍어주고 난 중간에 앉아서 인증을 남겼다.

 

깊은 심중에 딱 한 사람만 들여앉히고도 평생을 그리워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살 수 있듯이 석병산은 딱 하나 일월봉을 세워두고 평범한 가운데 비범한 모습으로 숫한 인파를 불러들이는 멋진 곳이었다. 이제까지 본 풍경 중에 으뜸이었다.

 

 

두리봉으로 가는 길

 

도토리의 출산

 

 

산조 팝 나무

 

 

 

 

 

 

석병산

 

해당화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산 돈내코 코스  (0) 2017.06.16
2017년의 지리산 종주(3 번째)  (0) 2017.06.08
설악산 귀때기청봉  (0) 2017.05.17
봄맞이(북한산에서)  (0) 2017.03.30
고창 방장산  (0) 2017.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