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고창 방장산

반야화 2017. 2. 22. 13:01

코스:장성 갈재-511봉-쓰리봉-서대봉-연자봉-방장산-억새봉-벽 오봉-갈미봉-양고살재

 

꽃이 없는 달 2월, 일 년 열두 달이 다 좋기만 하다면 꽃을, 단풍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눈꽃마저 져버린 2월은 침묵하는 달이다. 산천은 뭇 생명들의 동면으로 침묵하고 인간은 들뜨지 않는 마음으로 침묵하는 달이다. 2월의 산행은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에 따른 생명들이 스스로 잠에서 깨어 동토를 뚫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그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발걸음에도 조심하며 조용히 길을 가야 한다. 2월이 되면 하늘에서는 봄을 주제로 어떤 무대를 설치할까를 고민하고, 땅에서는 봄의 무대에 어떻게 꽃장식을 힐까를 고민하는 계절이고 지금쯤은 아마 봄의 프로젝트를 위한 기획이 진행 중일 것이라 생각된다. 천지간에 인간이란 얼마나 축복받은 생명인지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자연에 대한 도리다.

 

고창의 진산이고 삼신산의 하나에 속 할 정도로 산세가 웅장한 방장산에 가기 위해 장성 갈재에서 뚜렷하지 않은 산길을 오르는데 땅이 녹으면 질퍽여서 미끄럽고 언 곳은 얼음이어서 미끄럽고 어느 한 곳 마 음놓고 발 디딜 곳이 한 뼘도 없다. 2,3월은 산행하기엔 가장 어중간한 때다. 재미 볼 생각 같은 건 내려놓고 그 산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며 오르는 게 좋다. 그런 중에도 난 침묵하는 산에다가 초록색으로 채색도 해보고 눈으로 하얗게 덮어도 보는 연상작용을 하면서 걸었더니 역시 산은 내 맘속에서는 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크고 작은 몇 개의 봉우리를 넘는 동안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이 얼마나 넓은지 광대한 평야가 있고 그 드넓은 들판을 먹여 살릴 저수지 역시 여러 곳이 가득한 담수로 곡식을 살찌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들판이 가을이 되어 황금들판이 되면 또 얼마나 장관일까를 생각하며 걷는데 날씨가 흐리지도 않는데 보이는 것이 다 선명하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길은 여전히 미끄럽고 힘들게 한 고개를 넘으면 더 큰 태산 같은 고개가 떡 버티고 있어 방장산 정상은 멀기만 했다. 미끄럽지만 않으면 길은 다 좋아 보이고 풍경도 좋을 것 같은데 너무 긴장을 해서 많은 걸 놓치면서 발걸음에만 집중했다.

 

어떤 산이든 마음 빼앗기는 한 곳은 있기 마련인데 방장산 지나 억새봉에 올랐을 때가 그랬다. 산꼭대기가 잡초 하나 없는 잔디로만 덮여 있고 사방의 조망도 좋고 참 특별한 곳이었는데 거기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곳인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거기에 오르면 누구나 한 번쯤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지 새가 되어보는 자세로 날개를 펼친다. 질퍽이기만 하던 여정을 잠시 뽀송뽀송하게 쉬어갈 수 있어서 좋았지만 더 오래 머물지 못하고 벽 오봉, 갈미봉을 지나 하산하는 길로 들어선다. 갈미봉에 오르는 동안 계속 길이 미끄럽고 질었다. 그런데 갈미봉에서 내려가는 하산길은 길이 말라서 얼마나 편한지 잠시 길을 즐기다 보니 금방 양고살재에 도착해버리고 차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마른 길과 따뜻해진 오후를 더 걷고 싶었다.

 

신발에 묻은 진흙을 씻어내고 차에 오르니 언제나 중간팀에서 후미를 기다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차창 속에 모두가 우리를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느긋했던 마음이 우습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던 나와 친구, 그래도 우리는 지름길이 아니었던 완주에 보람을 느끼는 고되지만 즐거운 산행이었다.

 

 

 

 

 

 

 

 

 

억새봉

 

 

갈미봉 가는 길

 

양고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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