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살 때 하나의 산 같은 신라시대의 왕릉만 보다가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조선시대의 왕릉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래서 처음으로 집 근처에서 선정릉을 봤고 다음에 서오릉 등 여러 왕릉을 돌아봤지만 그중 조선 태조의 능이 가장 보고 싶었다. 당시 사대문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태조도 예외 없이 사대문 밖 비교적 가까운 구리에 능을 조성했는데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와 흙으로 능침을 조성했다고 해서 더욱 보고 싶었다.
가장 좋은 계절 오월에 구리에 있는 동구릉에 갔더니 들어서자마자 오월의 향기로 가득했다. 색이 고운 작약향부터 음미를 하고 능원 전체를 향이 깔리도록 떼죽꽃으로 하얗게 장식되어 있는 듯했다. 숲도 일 등급인데 향기로 가득한 방대한 능원 전체가 사후세계가 아니라 후손들의 현재를 향기롭게 보살피는 휴식처를 제공해 주는 공원이었다. 삶과 죽음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공존하는 공경과 경외심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었다.
동구릉 조감도,
동구릉은 부지 약 58만 평에 왕과 왕비의 능 17위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약 450여 년간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라고 한다. 1408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으로 조성되고 이후 능이 조성될 때마다 동오릉, 동칠릉 등으로 불리다가 문조의 수릉이 옮겨지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고 한다.
동구릉은 왕이나 왕후의 능을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 나란히 조성한 쌍릉,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 강릉, 한 능에 왕과 왕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 왕과 두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된 능이 모여있다. 조성과정에는 사연도 있다. 살았을 때 더 사랑하는 왕비와 함께 묻히고 싶었으나 사후까지 뜻대로 할 수는 없어서 태조께서는 더 사랑했던 계비인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지 못했다. 형제의 난과 부자간의 갈등으로 사후의 원을 이루지 못한 태조의 능인 건원릉의 모습은 무성한 억새가 향수를 달래주는 가운데 홀로 계시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정문을 지나 한참 들어가면 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어떤 능으로 먼저 갈까 고민해야 하는 길이다. 1번부터 가야 할지 태조릉을 먼저 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길 따라 차례로 가보기로 하고 길 왼쪽으로 가면 1,2번의 능인 숭릉과 혜릉이 있지만 제쳐두고 우선 길 오른쪽으로 따라가니 경릉이 나와서 먼저 보고 후로는 쭉 어어진 능을 보는 코스로 이동하다가 마지막으로 1,2번인 숭릉과 혜릉을 보고 끝냈다.
거대한 능원에는 떼죽과 쪽동백이 많아서 무척 향기로웠다.
경릉, 경릉은 세 개의 봉분으로 된 이루어졌다.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한 삼연릉이다. 그런데 능침으로는 오를 수 없어서 어떤 위치에서 봐도 온전히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왕들의 처소로 가는 길은 숲이 너무 좋아서 사후처소가 후대에게도 휴식을 주는 너무 좋은 안식처다.
원릉, 영조와 정순왕후의 능
건원릉의 정자각과 비각. 경릉, 원릉, 휘릉을 지나 네 번째로 태조의 능인 건원릉을 봤다.
건원릉 능침 위에 심어진 억새, 동구릉을 찾고 싶었던 이유가 조선의 태조라는 점과 고향의 흙과 억새로 조성된 특별함도 있어 꼭 방문하고 싶었다. 다른 왕들은 쌍릉이거나 합장능도 있는데 태조는 첫 번째 왕비인 신의왕후는 함흥에 있고 사랑했던 신덕왕후는 유일하게 사대문 안에 있다가 태종한테 훼손당하고 사대문 밖으로 이장되어 봉분도 없이 묻혀 있다가 88년 만에 송시열의 상소로 능침이 새로 조성되고 후궁으로 격하시켰던 것에서 신덕왕후로 복권되었다고 한다.
건원릉의 비문
건원릉의 신도비(보물), 조선개국의 과정과 생애와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
목릉으로 가는 숲길,
떼죽꽃배
목릉 홍살문
목릉, 선조와 의인왕후 능침인데
조선시대의 능을 보면 마치 신라의 왕릉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진처럼 신라왕릉 같은 언덕을 먼저 만들고 그 위에 왕릉이 있어서 다 그렇게 보이고 세계유산이 된 후로는 접근조차 막아서 아래서는 보이지도 않는 곳이 많아 혼유석 같은 걸 자세히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다.
다른 언덕에 있는 인목왕후
현릉, 문종
문종의 현덕왕후
수릉, 문조와 신정왕후
수릉, 수릉은 황제로 추존된 문조(효명세자)와 신정황후의 합장릉.
문조는 세자시절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 정치를 하다가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라고 했으며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에서 다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고 한다.
숭릉 연지
숭릉,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데 유일하게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각이 보물로 지정됨. 홍살문과 정자각, 쌍릉을 가장 반듯하고 정면에서 잘 찍을 수 있는 사진이다.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남부의 호수투어 (0) | 2024.06.06 |
---|---|
장미와 풀꽃 (0) | 2024.05.23 |
안동 만휴정과 묵계서원 (0) | 2024.04.27 |
올림픽공원에서..... (0) | 2024.04.17 |
화무십일홍 (0) | 202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