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산책은 더욱 여유롭다.
하얀 바탕에 검은 동체 같은 내가 눈길을 걷는다. 동네 한 바뀌 돌아 눈길 걷기에 제격인 수변공원이 있는 탄천으로 나아갔다. 두 손은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스칠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을 걷는데 새로 조성된 탄천 산책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탄천 물이 흐르고 , 다른 쪽에는 속도를 경쟁하듯 고속도로 위로 차가 흐른다.
고속도로와 물줄기는 닮은 점이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성질은 다르지만 둘은 잠들지 않는 것도 닮았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도 닮았는데 경쟁하듯 밤낮없이 흘러서 도달하는 종착지만 다르다. 물길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 종착지고 찻길은 인간의 목적지가 종착지다.
두 개의 긴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길이 물과 같고, 물이 길과 같다. 두 흐름을 따라 중간에서 걷는 나는 속도경쟁을 하는 길과 강의 심판관처럼 그들의 경쟁을 보면서 나도 흐른다. 신호등도 없으니 멈춤도 없고 누구도 막아서지 않는 속도에 잠들지 못하는 고속도로는 질주가 보는이다. 물이 흐르는 것도, 차가 흐르는 것도 멈춤 없는 그것이 시간이다. 또한 그것이 세월이다.
가끔씩 내가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도로 양쪽의 들판과 마을들이 다 따라나서며 나와 함께 달려가는 듯한 빠른 스케치가 그려진다. 그럴 때는 앞을 보지 않고 옆을 보면서 감상에 젖다 보면 어느새 도착한 지점에는 물도 길도 보이지 않고 나만 서있다.
물은 흐르는 자체를 즐긴다. 어떤 목적도 정한 바 없이 여울로 음률도 짓고 물새를 만나면 먹이도 주면서 놀아주고 수변 생명들에 목도 축여주며 할 일 다 하고 하심으로 가는 길은 더 이상 흐름이 없는 파도에 실려 강이란 이름을 지우고 바다가 되어 짜디짠 생을 새로 시작하는 깊은 비밀을 지키며 살게 된다.
함박눈을 그대로 맞으며 걸어보는 게 얼마만이냐.
날이 따스한데 눈이 내리니 금방 녹아버린다. 하얀 마을길을 보며 집을 나섰는데 탄천에 이르지 나무는 눈을 털어버리고 검은 그림자처럼 서 있다.
아직도 가을색이 남이 있다. 가을의 긴 여운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으니 더욱 아름답네.
마을로 들어오니 부지런한 사람이 설인 삼 형제를 만들어서 놀다 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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