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노숙과 불행

반야화 2024. 11. 25. 21:25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는 의식주로 규정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바뀌고 넘쳐나는 물질주의 시대에 살면서 의와 식은 하루 벌어 하루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의식주 가운데 주, 즉 살 곳을 마련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식세"가 먼저 기본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는 아침이다.

아침 출근시간에 발 디딜 틈 하나 없는데 "웬일이야, 자리가 비었네" 하면서 행운처럼 자리에 앉고 보니 어디선가 꼬랑꼬랑한 냄새가 난다. 왼쪽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쪽을 보니 아, 옆사람이 원인이었다. 그 복잡한 아침에 무슨 볼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는지 모습이 말이 아닌 여성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남루한 의복, 얼룩진 얼굴이 노숙을 하는 사람 같았다. 얼마나 씻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 때가 묻는다. 살 곳이 있으면 씻을 수도 있는데 살 곳이 없는 노숙인한테는 씻을 곳이 없다. 그러니 급한대로 의식세가 더 시급한 문제 같다.

모두가 피하는 옆자리를 앉았는데 쉽게 일어서지 못한다. 괜히 그분한테 미안해서 얼른 일어서지 못하고 덕분에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세수정도는 늦은 밤에 지하철 화장실 같은 데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가능한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 그들의 쉼터는 있는 걸로 아는데 어째서 들어가지 않는지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서 최소한 씻을 수 있게는 해줘야 남들과 섞이지 않을까?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상대적인 가난은 어려움이 더 깊어만 간다. 살다 보면 행복의 순간이 있지만 
마음 놓고 행복을 지킬 수가 없다. 행복 뒤에는 불행이 숨죽여 따라다니기 때문에 대놓고 행복하다고 말하기 조심스럽다. 불행이 뒤에서 듣고 "나 여기 있어" 하고 나타날까 봐 속으로만 이게 행복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행복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느끼는 게 행복이고 그것에 중독될 만큼 긴 기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불행은 한 번 찾아오면 쉽게 벗어날 수가 없어서 중독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오래되면 중독인 줄도 모르고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행복이 나한테는 오지 않을 거라고 행복 같은 건 포기하고 사는 수가 있다. 왜냐하면 벗어나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것에 중독이 되어버린다. 불행의 처방전은 무엇일까?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나라님이 씻는 거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마음이 불편해지는 아침이다. 오늘 아침에 만난 그 여성분이 불행에 중독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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