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경인 아라뱃길

반야화 2019. 11. 28. 21:13

경인 아라뱃길을 걷다.

11월 하순, 절기상으로는 겨울이지만 계절은 겨울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성큼 영역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소문으로만 듣던 아라뱃길을 걸었다. 아라뱃길은 인천 서해갑문에서 김포대교 아래에 있는 한강갑문까지 이어져 있는 운하다.

대중교통을 다섯번을 환승하면서 약 두 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는 모임 장소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9호선 급행을 타고 가는데 다행히 출근길의 반대 방향이어서 조금 지나 앉아서 갈 수 있었다. 9호선의 출근길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바닥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머리만으로 공간이 채워졌다. 일터를 향해 가야 하는 하루의 시작이 너무 힘들구나 싶어 잠시 내 가족의 고달픈 하루가 스쳐갔다. 한강이 동서를 잇는 우리 국토의 동맥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지류들의 흐름을 받아들여 바다로 가는데 9호선의 지도를 보면 한강의 흐름과 같은 모습으로 설치되어서 출근길의 동맥, 생활의 동맥 같이 물의 흐름을 따라 삶이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그 바쁜 하루의 아침에 나 같은 한가한 레저인의 편승까지 책임져 주는 철길이 빠른 속도로 약속 장소에 데려다 주니 어찌나 감사하던지......

 

열 시 반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모두들 제시간에 잘 도착해서 계양역 아래로 내려서니 하늘은 맑고 바람도 잔잔하여 봄날 같은 좋은 날씨가 우리의 흐름도 바다로 이끌어 주었다. 아라뱃길 위에는 한강갑문에서부터 전호대교-전호교-하나교-김포 아라 대교-백운교-벌말교-굴현 대교-계양대교-다남교-목상교-시천교-백석대교-북청라 대교-청운교-운하교, 18킬로미터의 길이에 15개의 다리가 놓여있는데 우리는 계양교에서부터 걸얼다. 말로만 듣던 아라뱃길의 첫인상은, 목적을 상실한 흐름이었으며 물류수송도 아니고 유람선을 띄우기에도 별 볼거리가 없는 것 같았고 굴포천의 공단 페수까지 흘러들어 그저 시커멓게 죽어 있는 정치적 무덤 같았다. 그러나 조금 더 걷다 보니 놀랍게도 새들의 군무가 있고 새들의 서식지 같기도 해서 완전 무용지물은 아닌 것 같은 걸 보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화가 된 것 같았다. 물줄기를 따라 느긋한 새들의 놀이터에 비해 빨리 달려가는 하이킹의 흐름과 천천히 걷기 좋은 도보의 길이 빠르고 느리게 대조를 이루면서 서로 물길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즐거운 길이 되기도 했다.

 

경인운하는 세월을 거슬어 올라가면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오랜 세월 동안 시도되었으니 중간에 암초가 있어 번번이 기술적인 면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맘만 먹으면 불가능이 없는 현시대의 기술로 물길은 이어져 완성이 되었으나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지만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갑문을 열어 한강 수위조절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존재가치는 있어 보였다. 예부터 치수사업을 잘하면 어진 임금으로 칭송받았다."나라는 백성이 근본이고, 백성은 먹는 것이 근보이다"라는 공자의 명언처럼 백성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을 잘 다스려 농사가 풍년이 들게 하고 싶었던 어진 임금의 뜻과는 너무 다른 현시대의 치수사업은 먹고사는 것보다는 먹고 노는 것에 더 취중 하는 것 같아 보일 정도로 전국의 강가는 이쁜 길을 거느리고 있고 거기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격세지감의 치수를 경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겨울이 되니 물길 주변에 잘 가꾸어진 수변 식구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다 알지 못하도록 꽃도 지고 잎도 지니 명패가 없는 자연의 지난 시절을 알 수 없었다.봄이 되면 모든 수변 식구들이 다 깨어나서 꽃과 잎으로 조화를 이루면 다시 그 길을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이왕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로를 잘 이용해서 무용지물이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정치적 무덤에서 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강토로 변모하는 멋진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종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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