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밑 제비꽃이 소담하게 모여 필 무렵 난 더 깊은 봄 속으로 들어갔다.
4월이면 벚꽃보다 먼저 생각나는 청보리 물결이 이는 가파도를 생각한다. 처음으로 가파도를 찾았던 때를 잊을 수 없는 그날, 세월호 침몰이 있어 목적지였던 제주에 이르지 못한 슬픔이 서려 있는 그 바다를 건너며 무척 아팠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그날의 보리밭은 파랗다 못해 군데군데 누렇게 누워 있던 그 자리를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과 결부시키며 혼자 애도의 마음 안고 걸었다. 그런데 그 후 몇 번을 더 찾았지만 그날의 가파도만큼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약간씩 못해지는 걸 느껴야 했다. 그날따라 바람이 보리싹 위에서 초록 파도를 타며 건강하게 풍차 바람과 해풍에 춤추던 그 밭을 이제는 볼 수 없는 것일까.
두 번째는 늦은 겨울에 갔었는데 그때는 텅 빈 보리밭이 황량하기만 했고 세 번째는 보리밭이 왠지 가꾸지 않고 내버려 둔 들판처럼 보리가 키도 작고 초라해 보이더니 이번엔 완전 다른 모습의 가파도를 봤다. 가파도의 상징 같은 보리밭에 노란 유채꽃이 예쁜 점령군이 되어 온통 노란 섬이 되어 있었다. 아마 처음으로 가파도를 찾은 사람들은 원래 그런 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유채꽃밭은 빛이 좋아서 눈부실 정도로 빛났고 청보리는 마치 명맥을 이어야 하는 사명감에 버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한쪽 귀퉁이에 초라하게 키도 자라지 못하고 서 있었다. 눈부신 노란색에 기죽어 외면받는 그 섬이 나에겐 노란 섬보다는 초록섬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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