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6일, 오랜만에 제주를 다녀왔다. 장마 중이었지만 어쩌다 각처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급하게 우리들의 본부 같은 제주에서 만남을 가졌다. 제주의 여름은 어느 곳보다 덥다. 소금기 많은 습도가 높으면 달라붙는 옷과 끈적임이 싫지만 다행히 비가 오는 중에는 시원한 날씨여서 비옷을 입고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무척 투명하고 짙은 녹음이 싱그럽게 곶자왈을 이루고 있었다. 제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현지인과 함께 다니는 것인데 우리가 갈 때마다 숨은 명소를 소개해 주는 지인이 있어서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알차게 즐기고 온다. 그동안 제주를 많이 갔지만 아직도 모르는 곳이 많다. 이번에 간 숲은 궷물 오름이 있는 둘레길이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첫 입구부터 제철을 맞은 산수국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초록색에 하얀 물방울무늬 바탕 같았다. 제주에서는 산수국을 탐라 수국이라고도 하고 옛 제주 어른들은 톳 제비(도깨비) 꽃이라고도 했다고 하는데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밤이 되어 숲이 깜깜해지면 어둠 속에서 수국이 하얗게 빛나면서 마치 도깨비의 불빛 같이 보였을 것 같았다. 넓은 숲이 밑에는 온통 수국이 바탕을 이루고 이름 모를 나무들은 덩굴들이 감아서 토피어리가 되어 있고 감고 감기면서 공생하는 제주의 곶자왈은 제주인의 억센 삶과도 닮아 있다. 그런 숲을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담소를 곁들인 발걸음이 너무 좋아서 하루가 행복으로 충만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큰 노꼬뫼 오름과 작은 노꼬뫼 오름을 지나고 거의 끝나갈 무렵에 궷물을 봤는데 걸을 때는 오름 같지도 않더니 하산하는 길이 제법 내려가는 걸 보고 우리가 오름을 걷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옛날에는 이 숲에서 말들을 풀어놓고 풀을 뜯게 하는 테우리(목동)들이 있어서 테우리 길이라고도 하고 현재도 목동들의 쉼터를 새로 지은 듯한 작은 공간을 재현해 두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노꼬뫼 오름에도 올라보면 한라산이 잘 보이고 전망이 좋다고 하니 언젠가는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리스트에 올려둔다.
궷물오름은 제주시 애월읍에 있는 오름인데 궷물이란, 땅 속으로 패인 바위굴에서 샘물이 솟아난다는 뜻이다. 숲 속에는 여래 갈래의 길이 있다. 우리가 걸은 길은 족은(작은) 노꼬뫼 둘레길, 삼나무 숲길, 조릿대 길을 걸었다. 궷물오름은 낮은 오름이고 정상 같지 않은 곳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빛이 오솔길 양쪽에 자그마하게 고여 있었다. 비기 많이 와서인지 생각도 못했는데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물이 깊게 고여 있어서 깜짝 놀랐고 신기했다. 물속에는 올챙이가 소복이 떠 있고 이미 개구리가 되어서 헤엄을 치는 놈도 있었다.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제주의 숲 속은 언제나 들어가는 순간 걷고 있는 나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하는 오직 숲과 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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