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주의 봄꽃이 한 달 가까이 늦어져서 현지 사람들도 꽃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헛걸음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어서 2월 중순이면 꽃을 볼 수 있는데 일진이 좋으면 눈 덮인 곶자왈에서 눈꽃 같은 하얀 꽃을 볼 수 있지만 말로만 들었던 풍경이다. 그런데 올해는 두 번이나 헛걸음했다는 지인과 세 번째 동행 끝에 백서향을 보고 왔다. 꽃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피는데 왜 그렇게 빨리 져버리는지, 더구나 향기로운 이쁜 꽃들이. 내가 갔을 때는 3월 28일이었는데 꽃이 시들기 시작해서 향기를 잃고 있었다.
육지에서는 봄이라는 말만 나오면 제주로 백서향 향기가 그리워 오직 그 꽃을 보기 위해서 날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아는 사람만이 간다. 향기는 꽃의 영혼이라고 하는데 영혼 없는 살아 있는 것을 만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싱싱할 때는 곶자왈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꽃은 보이지 않고 향기가 먼저 꽃이 피었음을 전해온다. 향기가 백리를 간다는 꽃이다. 향기는 잃었지만 음지에는 만개한 꽃이 마치 늦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전히 이쁘고 탐스럽게 남아 있었다.
꽃이 없어도 난 곶자왈을 무척 좋아한다. 심신이 지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깊숙이 곶자왈에 잠겨 있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나무와 이끼류인 콩 자개 덩굴이 까만 돌들을 다 덮고 있고 수많은 덩굴 식물들이 교목들을 휘감고 공생을 하고 있는 숲 속에서 구멍 숭숭한 돌 틈 사이로 올라오는 맑은 공기는 어느 곳보다 싱그럽다. 그런 곶자왈을 수없이 많은 제주는 지친 이들을 보듬어 치료해주는 세러피가 있는 곳이다. 제주가 발전보다는 숲을 보전하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로 남아 있기를 원하는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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