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86

수월봉과 추사기념관

멀리 한라산의 원경을 한눈에 바라보면서 올레 12코스에 있는 수월봉에 가는 길이다. 제주의 서쪽 바다를 가장 넓게 품고 있는 수월봉은 낙조 광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차귀도와 풀력발전소가 있고 해안절벽이 2킬로 까지 이어지고 있는 수월봉에 올라 그 큰 바다를 이 작은 두 눈에 다 넣을 수 있는 높이에서 바라보는 바다를 보면 우선 "저 깊고 넓은 바다가 어떻게 지구 표면에 붙어 있을까 하는 무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절집 일주문에 주련으로 쓰여있는 "입차 문래 막 존 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으로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라는 뜻처럼 생각으로 지식으로 아는 척할 수가 없는 선계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런 풍경에 매료되었는지 심하게 미끄러져 더 이상 해안 도로를 걷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 채..

제주의 사계 2013.03.01

사려니숲과 노리매공원

제주는 숲 속의 도시다. 제주시만 벗어나면 특별하게 이름 붙여지지 않은 광활한 들판과 오름들이 다 숲이지만 또한 보호하고 가꾸어진 이름이 붙여진 숲도 많은데 그중에서 우선 사려니 숲을 먼저 갔다. 어떤 곳을 찾아가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주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가는 수도 있다. 그래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잘 찾아다닐 수 있는 것도 퇴화되지 않는 정신인 것 같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내려 눈밭에 사람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정문이 나왔다. 휴식년제를 제외하고 총 걸어야 할 거리는 10킬로, 시작하는데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섞여있지만 물찻오름을 돌아서면 빽빽하고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나타나는데 점점 기온이 오르고 눈이 녹은 흙..

제주의 사계 2013.02.27

이중섭미술관

오늘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이중섭 생가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있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다행히 미술관은 실내이기 때문에 둘러보는데 지장이 없어 편히 감상하고 생가에 들어갔더니 오래된 초가 한 칸이 이중섭의 생가인 줄 알았더니 기막히게도 초라한 초가 한 모퉁이 1평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면서 네 식구가 생활을 했다고 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눈물이 나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에 잠겼다. 생전에 그림의 작품성을 지금만큼만 평가를 받았더라면 조금 더 편히 살 수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유명 작가들은 거의 사후에 빛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후에 아무리 천재적인 화가라고 평가를 받은들 무슨소용이 있을까! 가난 때문에 종이도 살 수 없어 담배갑이며 껌딱지에다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인지..

제주의 사계 2013.02.19

제주 카멜리아 힐

카멜리아 힐, 박수기정, 신라호텔, 천지연 폭포 제주에는 겨울 한편에 봄도 있는 것 같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서귀포는 완전히 다른 날씨여서 제주 쪽에 비가 와도 서귀포는 맑을 때가 많다고 한다. 제주에 반해서 제주시민이 된 딸이 구석구석 알려지지 않는 부분까지 찾아다니면서 즐기고 있는데, 그 덕에 엄마에게 답사한 곳 중에서 좋았던 곳을 앞으로 다 보여준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참 즐겁다. 이날도 출발하기 전부터 비가 오는데 서귀포는 괜찮을 거라며 집을 나섰더니 쭉 뻗은 도로 양쪽에는 아직도 푸른 가로수와 억새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가운데 먼저 카멜리아 힐로 갔다. 이곳은 육만 평의 대지에 희귀 동백 500여 종 6000그루로 조성된 동양 최대의 동백 정원이라고 한다. 종류에 따라 이미 져버..

제주의 사계 2012.12.12

한라산 영실코스

너무 벅찬 어떤 것을 혼자 감당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입니다. 나쁜 일일 때는 당연하지만 좋은 일일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것을 보고도 그 감동을 누구와 함께 공감하면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환호가 아닌 혼자 안으로 채워 넣는 억누르기 힘든 마음도 벅차다는 걸 알았습니다. 작년 겨울에 한라산 성판악코스를 가족과 함께 가서 거대한 그릇 같은 백록담에 소복이 쌓인 설경을 봤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어서인지 벅차다기보다는 순간순간 행복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12월 8일. 딸과 함께 한라산 영실코스를 오르려다가 눈보라가 심해서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떠나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서울행을 늦추면서 월요일에 혼자서 재 시도를 했는데 날씨도 좋고 다행히 눈은 그친 ..

제주의 사계 201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