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기다림의 대상이 자연일 때가 가장 순수하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그리움은 때론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기다림은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자연은 어느 누구의 특정 대상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자의 대상이 되어준다. 자연은 그냥 있어주기만 한다. 치장하지 않아도 예쁘고 새파랗게만 살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것이 무위의 자연이다. 얼마나 좋은가, 자연의 심성이.
오랜만에 그리운 제주의 숲을 찾아간다. 올레길을 두 번 완주하기 위해서 또는 산과 숲을 찾고 싶을 때 부단히 쫓아다니던 제주를 한동안 가지 못하다가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나와 똑같은 친구들의 만남이 제주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 제주로 가면 이야기가 참 많아서 좋다. 길지 않은 일정이지만 심신 가득 채우고 오는 여행이다.
제주의 이름난 숲은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워낙 숲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제주에는 아직도 가보지 않은 숲이 있었다. 이번에는 삼다수 숲으로 들어간다. 일단 숲으로 들어갈 때는 가슴과 영혼까지 열고 내 안으로 숲이 주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자세로 임하여 자연의 신비와 그 속에 사는 숲의 식구들이 들려주는 모든 소리까지 다 호흡과 감각기관으로 깊이 들이마시고 나면 몸과 마음이 뭔가 업그레이드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올가을은 걸음이 좀 늦어진 것 같다. 그래도 숲 깊이 들어가면 초록물이 흐르던 숲에도 세월가면 윤기 나던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기듯이, 숲에도 푸르르던 잎에 붉은 반점 같은 단풍이 더러 보인다. 사람이나 자연도 늙어가는 과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삼다수를 머금은 제주의 숲은 자연의 표상이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나무나 숲은 반 자연적이다. 나무의 생각을 알리 없는 인간위주로 다듬어지고 팔을 잘리고 수난을 당하는 도시의 그것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제주의 숲은 크고 싶은 대로 크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간다. 그것이 자연이지. 나무기둥은 이끼옷을 입고 넝쿨들이 함께 살자며 남의 몸을 감고 올라 삶을 방해하더라도 화내지 않고 공생하는 그 모습도 제주의 숲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강물을 정화하고 그 대가를 비싸게 치르면서도 수돗물을 믿지 못하고 언제부턴가 우리는 땅이 간직하고 있는 자연의 생명수를 탐내며 숲을 키우는 땅속의 물을 뺏어먹고 있다. 그런 인간의 욕심을 채워주는 물을 생수라고 마시며 그중에 가장 질 좋은 것을 삼다수라고 한다. 삼다수숲은 숲 자체가 그 물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삼다수"의 원천이다. 우리는 숲을 걸으면서 호흡으로 살갗으로 그 물을 마시며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숲길입구
초록색 바탕 같은 조릿대를 깔아두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그림 같은 숲이다.
천남성열매, 독초이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
까만 돌담과 개미취
편백나무숲길
노릿 물, 노루들이 먹는 물이라는 뜻
단풍나무 군락지
편백나무 군락지
낭뜰에 쉼팡에서 이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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