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하얀색 얼레지에 반한 날

반야화 2024. 4. 10. 15:04

꽃 한 송이에 굴종한 하루였다.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법이다. 나는 처음으로 만난 하얀색 얼레지를 보고 얼레지한테 지기로 결심하고 세 시간을 기다리며 그 앞에 엎드렸다. 내가 선택한 아름다운 굴종이다. 얼레지는 꽃을 좋아하고 아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작고 가녀린 꽃이다.

분홍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곳에 관찰력이 좋은 우리의 눈에 발견된 하얀 얼레지 딱 한 포기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너무 아쉬웠는데 한 친구가 기어이 꽃잎이 활짝 열릴 때까지 기다리지고 했다. 지금 못 보면 다시 못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이 점점 꽃잎을 열 때까지 세 시간이 걸렸고 우리는 결국 활짝 열린 하얀색 얼레지를 고이 담을 수 있었다.

보고 싶었던 것을 보게 되는 날의 행복감, 땅에 딱 붙어서 꽃 피운 것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사진을 찍었다. 분홍색은 많이 봤고 노란색은 로키산맥 트레킹 중에 봤지만 흰색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얼레지 피는 시기를 맞혀 검단산으로 갔더니 한창 피어나고 있는 그 넓은 장소에 홍일점처럼 딱 한 포기, 그것도 입을 꼭 다문 채 있었는데 기적처럼 그님이 눈에 띄었다. 일행은 흥분했고 빛이 좋으니 오늘 중으로 활짝 필거야 하면서 기다린 끝에 세 시간이 흐르자 그 입술이 우리 앞에 열렸다.

하얀 꽃잎이 한 장씩 열리는 동안 옆에 있는 분홍색을 찍으면서 기다려도 다 열리지 않아 점심까지 먹으면서 그 곁을 지켰더니 드디어 잎을 열고 꽃술을 보여주면서 생생히 우리 앞에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십 번을 찍으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결국 낙엽이 다 부서지도록 맨땅이 된 주변을 잘 정리하고 돌아왔다. 이제 알았으니 내년에도 만나러 간다.

처음부터 얼레지가 피는 과정을 지켜보며  담은 거. 세 시간 만에 꽃잎을 다 열었지만 꽃잎을 뒤로 다 말아 올리고 속까지  보려면 더 시간이 걸린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아쉽지만 돌아왔다. 줄기차게 기다린 후에.....

하얀색을 보므로 이제 종류별로 다 본 셈이다. 이 중에 노란색은 캐나다 로키산맥에서 본 거.

많이 버리고도 공들여 담아 온 것들을 차마 더 이상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는 것들.

새별꽃

'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홍 얼레지  (0) 2024.04.10
보미양, 노루귀  (0) 2023.03.17
이른봄 야생화  (0) 2023.03.17
천마산 야생화  (0) 2022.04.10
도도한 꽃의 여왕 (화야산)  (0)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