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친구와 함께 경주 남산을 돌아 이튿날 포항 청하 보경사가 있는 내연산으로 갔다. 지난해 늦가을에 갔었지 이번엔 다른 코스로 가보고 싶기도 하고 석가탄신일 행사도 있고 겸사겸사 며칠을 당겨서 두루 여행부터 하는 일정이라 친구는 미리 올라가고 9일을 경주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난 아직 설익은 풋 불자인가? 화두를 잡고 동정 일여, 몽중 일여, 숙면 일여가 되어 끝내는 오매 일여가 되기는커녕 자연과, 산과 오매 일여가 될 지경이니 스스로 한 심타 생각지만 나의 화두는 때를 만나지 못한 정체불명이며 잎사귀도 피우지 못한다.
지구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 오월, 우리는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무료로 제공되는 이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면서 행복의 소스를 만들고 있는 축복 받은 생이며. 죽음이란 이 모든 걸 버리고 지구 우주선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승선에서 영원하고 싶어라. 여행은 우리의 삶이 간이역마다 다 들려서 잠 쉬 쉬어가는 긴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중에 하나가 또 내연산에 내린 것이지. 골이 얼마나 깊으면 12폭포를 거느리고 있을까! 지난번에 12 폭포를 다 보지 못한 아쉬움에 이끌려 다시 찾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8개밖에 못 봤다.향로봉까지 2킬로를 더 올라야 볼 것 같은데 상경해야 하는 친구의 시간이 걱정이 되어서 하산하고 보니 12 폭포를 다 보기 위해선 삼 세번을 해야 할 판이다.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이 열정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9일 동안의 고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밤 풍경 또한 경이로웠다. 평소에는 밝음과 어둠의 극명한 차이만 느꼈다. 그런데 오후 6시 버스를 타고 오는데 창 밖으로 시간의 흐름을 본다. 서서히 낮시간이 저물고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묘한 시간, 석양에서 황혼으로 밝음이 어둠에 흡수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데 멀리 촌락에 불빛이 하나 둘 밝혀지고 스쳐가는 속도에는 마치 어둠에다가 노란 금박을 수놓은 듯했다. 그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는 사이 어느새 성남 터미널에 도착하고 무거운 짐과 밀려오는 피로감이 집까지 가는 길이 더욱 멀기만 했다. 다음엔 또 어느 간이역에 쉬게 될지 오월의 마지막까지 나의 마음은 두근거림이 끝날 줄 모르고 출렁데고 있다.
관음사 일주문이 너무 이쁘다.
영상 폭포
보경사의 수로는 언제 봐도 멋지다.
계곡에서 경사면을 따라 힘차게 흐르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손님이 오신 듯
보경사 경내에 있는 샘물이 밑에서부터 솟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