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 철은 집 밖에만 나가면 내 모습이 풍경화 속에 들어 있는 인물이 된다. 어느 한 곳이 아닌 마을마다, 들판마다, 산천마다 저마다의 풍경화를 그려놓고 마치 심사를 받기 위한 행사를 열어둔 것 같다. 아무 곳을 다녀도 산, 들, 마을의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다 좋아, 그런데 전시 기간이 너무 짧아"
"더 길게 전시하는 쪽에 점수를 많이 줄 거야"라고 말하고 말았다.
새봄 어린 새싹에서부터 낙엽이 질 때까지 난 그들의 한 해 살이를 지켜보며 산천을 헤매고 다녔다. 모체에서 아기 눈이 쏙 나오고, 눈을 뜨고, 꽃 피우고, 꽃지고, 무성한 숲이 되고, 단풍 들고 낙엽질 때까지, 이제 낙엽 지면 나무들의 한 해 살이는 끝이 나는 셈이다. 겨울에는 숙면을 취하면서 이듬해 봄을 위한 꿈을 꾸게 되겠지. 겨울에도 꽃을 피우기는 한다. 그러나 눈꽃은 스스로 피우는 게 아니라 다만 하늘이 꽃을 만들 수 있도록 잠시 몸을 빌려주는 이타 행위일 뿐이다.
나의 발걸음은 멀리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좁혀 들다가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집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제는 가까운 수원화성 수호 산격인 팔달산에 갔다. 단풍을 드리운 성체를 보고 싶었다. 높은 산 위에는 이미 단풍이 다 말랐지만 마을 근처 산은 예상대로 아직 고운 색을 유지하면서 아름다운 그림이 심사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점씩 빼고 점수를 주었다면 성곽과 단풍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화 앞에서 야박할 수가 없어 최고 점수인 만점을 주고 심사는 끝이 났다.
수원역에서부터 걸어서 접근했다. 로데오시장을 통과하고 경기도청에서 팔달산 둘레길로 접어들어서 서장대에 올라 옛 성내를 바라보다가 팔달산 둘레길 반을 걷고 화서문으로 나왔다. 다음으로 수원천으로 접어들어 광교저수지까지 가서 저수지 둘레길을 다 돌고 나니 약 12킬로를 걸었다. 그것도 부족해서 광교산 들머리 단풍이 궁금해서 조금 올라가서 단풍길을 맛보고 13번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서 지하철로 돌아온 고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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