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가장 먼저 만나러 가는 속리산 가는 길이다.
더디다고 투정 부리고 싶지 않은 계절이 가을인데 그래도 가을의 색체만큼은 기다려진다. 올해는 단풍이 늦은 감이 있어서 속리산에도 아직 만산홍엽이 되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봐야 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속리산을 가지만 법주사에서 오르기는 처음이다. 갈 때마다 법주사와 정이품송이 보고 싶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쳐가는 절이나 문화제 같은 것은 보려 하지 않아서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큰딸 내외하고 승용차로 가족 등산으로 가니까 법주사 들머리에 있는 정이품송을 만나고 하산 길에 법주사 경내를 둘러보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좋았다.
정이품송 앞에 섰는데 순간 큰 어른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그런 마음이 밀려왔다. 600여 년을 간직하면서 한쪽 팔을 잃은 것 같이 좌우대칭에서 한쪽이 허전한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원래의 사진을 보면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삼각구도를 유지하면서 자란 것이 참 특별했다 그런가 하면 몸체 아랫부분이 아주 안정감 있는 배흘림기둥의 원형 같았고 위로 자랄수록 뭄체는 곧은 일직선에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이채로웠다. 수없이 산을 찾아도 이만큼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소나무를 본 적이 없어서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가다가 힘들면 돌아서자는 말을 하고 올랐지만 오르다 보면 정상이 보고 싶고, 그렇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앞에서 둘을 끌었다. 약 세 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문장대에 올랐다. 처음 보는 문장대를 어떤 마음으로 봤을까 궁금했는데 그 웅장한 모습에 아무 감흥이 일지 않는다면 산을 찾을 자격이 없는 거지, 역시 딸은 너무 감격해하는 모습이었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겹겹이 쌓여 펼쳐진 일망무제의 원경이 마치 파도치는 모습이라고 했다."멋지지, 저것이 바로 너울 파도 같은 산너울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딸은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법주사 코스로 오르면 문장대에 설 때까지 밋밋하고 멋진 산봉우리 같은 건 없으니 문장대는 더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장대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산신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산행 초보인 둘을 데리고 가는 산길은 느리기만 했다. 왕복 약 6시간을 산행하고 하산 후 법주사를 둘러보는데 마음이 바빴다. 경내로 들어서는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중심에 팔상전이 눈길을 확 끌어들인다. 퇴색된 단청의 오층 목탑은 어쩌면 형태와 켜켜이 쌓인 세월을 한눈에 보이는 것이 정이품송을 닮아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교한 짜임과 세밀한 부처님 일대기의 표현이 너무 놀라웠다. 그 외 법주사의 모든 것이 국보였고 환경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거대한 사찰 숲에 싸여서 가을에 물들어가는 법주사를 마음껏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발길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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