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속리산 가족등산(큰딸 부부)

반야화 2021. 10. 24. 13:44

가을을 가장 먼저 만나러 가는 속리산 가는 길이다.
더디다고 투정 부리고 싶지 않은 계절이 가을인데 그래도 가을의 색체만큼은 기다려진다. 올해는 단풍이 늦은 감이 있어서 속리산에도 아직 만산홍엽이 되려면 일주일은 더 있어봐야 될 것 같았다. 세 번째 속리산을 가지만 법주사에서 오르기는 처음이다. 갈 때마다 법주사와 정이품송이 보고 싶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쳐가는 절이나 문화제 같은 것은 보려 하지 않아서 늘 불만이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큰딸 내외하고 승용차로 가족 등산으로 가니까 법주사 들머리에 있는 정이품송을 만나고 하산 길에 법주사 경내를 둘러보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좋았다.

정이품송 앞에 섰는데 순간 큰 어른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한, 그런 마음이 밀려왔다. 600여 년을 간직하면서 한쪽 팔을 잃은 것 같이 좌우대칭에서 한쪽이 허전한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원래의 사진을 보면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삼각구도를 유지하면서 자란 것이 참 특별했다 그런가 하면 몸체 아랫부분이 아주 안정감 있는 배흘림기둥의 원형 같았고 위로 자랄수록 뭄체는 곧은 일직선에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이채로웠다. 수없이 산을 찾아도 이만큼 우아하고 기품 있는 소나무를 본 적이 없어서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가다가 힘들면 돌아서자는 말을 하고 올랐지만 오르다 보면 정상이 보고 싶고, 그렇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앞에서 둘을 끌었다. 약 세 시간 정도 걸려서 드디어 문장대에 올랐다. 처음 보는 문장대를 어떤 마음으로 봤을까 궁금했는데 그 웅장한 모습에 아무 감흥이 일지 않는다면 산을 찾을 자격이 없는 거지, 역시 딸은 너무 감격해하는 모습이었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겹겹이 쌓여 펼쳐진 일망무제의 원경이 마치 파도치는 모습이라고 했다."멋지지, 저것이 바로 너울 파도 같은 산너울이야"라고 말해주었다. 딸은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다. 법주사 코스로 오르면 문장대에 설 때까지 밋밋하고 멋진 산봉우리 같은 건 없으니 문장대는 더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장대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산신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산행 초보인 둘을 데리고 가는 산길은 느리기만 했다. 왕복 약 6시간을 산행하고 하산 후 법주사를 둘러보는데 마음이 바빴다. 경내로 들어서는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면 가장 중심에 팔상전이 눈길을 확 끌어들인다. 퇴색된 단청의 오층 목탑은 어쩌면 형태와 켜켜이 쌓인 세월을 한눈에 보이는 것이 정이품송을 닮아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정교한 짜임과 세밀한 부처님 일대기의 표현이 너무 놀라웠다. 그 외 법주사의 모든 것이 국보였고 환경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거대한 사찰 숲에 싸여서 가을에 물들어가는 법주사를 마음껏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발길은 아쉬움이 남았다.

법주사 일주문,호서제일 가람
저수지 물 속에 잠긴 나뭇가지는 몇 년 전과 같이 아직도 그자리 그대로 있었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던 자라도 옛모습으로 앉아 있었지만 전에는 세마리를 봤는데 이번엔 한 마리만 앉아 있었다.두마리는 살아 있을까.
이 뭣고 다리.화두를 지니고 가라는 뜻일까?
중턱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오랫만에 보는 산너울의 곡선
문장대.저 모습은 언제나 문장대 정수리 위의 머리털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빽빽하다.
우리 큰 딸이 드디어 문장대에 오르다.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상주쪽으로 오르면 저 풍경을 다 지나오지만 법주사로 오르면 멋진 암봉 같은 건 만니지 못하고 문장대까지 오른다.그러다가 문장대에 오르면 이제까지 지나온 것과는 별개의 놀랍도록 딴 세상이 펼쳐진다.절로 나오는 탄성을 속으로 삭힐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하산길은 한결 편하겠지.
보현재
한 줌 흙과, 한 알의 솔씨가 만들어낸 공생의 관계다.이제는 서러 떨어져 살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백수를 하기를 기원한다.
나무의 일생,아낌 없이 주고 가는 나무의 일생은 너무도 숭고하게 느껴진다.악취가 아닌 향기를 지닌 채 죽어서도 화석 같은 모습으로 늠름하다.
몇년 전에 찍은 목욕소,이번엔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이곳에서 세조가 몸을 씻고 피부병이 나있다고 하는데 당시의 모습은 제법 깊은 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세조가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나았다는 목욕소

법주사 천왕문
석연지,국보64호이며 신라 경덕왕19년(720) 조성했다고 한다,본당인 용화전이 있었을 때 장엄품으로 설리했던 것,둘레 6.65미터 높이 1.95미터의 화강암 그릇인데 겉면에 연화가 새겨져 있고 돌로 만든 연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규모가 엄청나다.
팔상전,국보 55호인 5층 목조탑이며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를 모시고 있다.법주사를 처음 만들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때 불타 소실 된 것을 선조 38년 1605년부터 인조 4년1626년에 걸쳐 벽암대사가 주관하여 다시 세웠다고 한다.법주사 안에 있는 건축물 중에 가장 옛스러운 모습 같았다.
대웅보전
쌍사자 석등,신라 석등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 (720)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높이가 3,3미터로 팔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사자 두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바치고 있는모습이다.
사천왕 석등,사천왕이 조각 되어 있는 석등이다.높이가 3,9미터다.
철솥,법주사 공양간 근처에 있던 것으로 규모는 높이 1,2미터, 지름 2,7미터,둘레 10.8미터,두께 10센티미터,무게 20톤.큰 사발모양이며 이 철솥은 쌀 40가마니를 담을 수 있는 규모로 전해오는 말로는 법주시가 한창 번성하여 3000명의 승도가 운집하고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제작연대,제작자.제조방법은 알 수 없지만 주철로 주조된 대형의 주물솥으로 기술사적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이 솥에서 밥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었을지 밥하는 것이 큰 공덕이 되었을 것 같다.밥맛은 얼마나 좋았을지 많은 상상을 자아내는 솥이다.
철솥의 내부.
마애여래 입상
부도탑
참 특이한 나무인데, 잎을 보면 회향목 같기도 하고 줄기 하나에 한다발의 잎 뭉터기가 꼭 겨우살이 깉기도 하다. 회향목이 이렇게 나무모양을 하고 있는 건 본 적이 없어서 알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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