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슬아슬하게 한해를 거의 다 지나왔다.
새 달력의 365일을 받아 들고 숫자 하나하나를 살얼음 딛듯이 징검징검 건너는데 날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반질반질한 징검다리 돌이 되어 위태롭고 혹시라도 잘 못 디뎌 전염의 바다에 빠져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어느덧 종착지에 도달했다. 그러다 보니 돌 하나하나에 간절함을 실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사히 건너옴에 무척 감사하며 새로운 날들을 받아 쥐었을 때는 거친 돌을 쉽게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어주길 두 손 모으면서 시작하는 시점에 와 있다. 새날들은 어느덧 내 앞에 서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며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듯한데 징검다리 입구에 서성이며 선뜻 들어서기 겁이 날 정도로 낯선 숫자가 무섭다.
사계절 중에 가장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계절은 봄이다. 겨울이 길지 않으면 봄은 기다림도 그리움도 없이 맞이하겠지만 검고 긴 겨울을 다섯 달 정도는 기다려만 아기 같은 작은 새싹을 볼 수 있기에 봄은 늘 기다림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봄의 씨앗을 품고 긴 겨울잠에 빠져 있는 산천에 모진 바람이 불어도 산천은 흔들리지 않는다. 강한 모성애를 발휘하며 씨앗들을 잉태한 채 숙면을 취하는 산의 표피를 건드리며 겨울산을 산책한다. 겨울 숲은 무심한 것 같지만 참으로 인자하다. 봄을 잉태한 어머니의 심성으로 혹한에 맞서면서 생명을 지켜내고 있는 자연의 모성에는 봄이 오면 위대함이 극에 달한다. 그래서 매년 맞이하는 봄이지만 새싹이 올라오면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겨울산은 다채롭지 않다. 갈색 바탕에 검은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 같이 한 가지 갈색으로 단조롭다. 이 단조로운 겨울 색채 속에 어쩌다 소나무 한 그루 섞여 있는 모습은 오히려 수묵화를 망치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 왠지 겨울산의 객식구 같이 섞이지 못하는 독불장군 같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침실에 몰래 숨어든 타인 같은 소나무도 그들 끼라 모여 있으면 씩씩한 기상이 느껴져서 나름대로 공허한 겨울 숲에 생기를 주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잠들지 못하는 물도 잠든 나무를 깨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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