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동짓날이다.
하지에서 시작한 시간의 변화는 하루에 1분씩 줄어들면서 약 3시간이 짧아져서 동지에 기점을 찍고 마치 음지에서 양지로 나가는 것처럼 오늘부터 점차작으로 양지를 지향해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 속에서 음양이 이루어지고 그 음양 속에서 만물의 소생과 성장과 결실이 상생되어가는 순환과정에서 오직 사람만이 그 궤도를 벗어나 앞으로만 나가는 일차원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내 생의 직선의 끝이란 소실점보다 더 멀어 보이진 않지만 분명 그 한계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직선의 끝이 두렵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오늘이다.
내가 그어온 산행거리가 올해 들어 부쩍 줄어들었다.마음은 더욱 늘려놓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 어느새 동지를 맞아 구구소한도 한 그루를 심어놓는다. 벽면에 매화가 활짝 피는 날 새로운 발길의 선을 선명히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스로와의 약속이 가장 지키기 어려웠다.
밤이 가장 긴 날 답게 아침 7시에 출발해도 창밖은 어둠에 쌓여 있고 약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야 그 미명에서 벗어나 아침해를 맞는데 일시에 밝아지지 않는 걸 보면 구름이 좀 낀 날 같기도 하다. 기대를 눌러둔 채로 춘천에 들어섰는데 호반의 도시답게 운무가 덮쳐오면서 일시에 구름바다에 승선한 기분이 들었다. 오봉산은 높이가 779미터인데 차로 600 고지까지 올라가다 보니 갑자기 운무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아침이 눈부시다. 낮게 깔린 구름 위로 올라서서 이제는 운해의 섬과도 같은 산으로 오르는데 간밤에 비까지 내려서 산 중턱에 오르니 그 공기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몸속에 부레라도 만들어 밀어 넣었다가 먼지 낀 어느 날에 꺼내 마시고 싶을 정도로 향기로워서 날숨보다 들숨이 더 길어졌다.
가파른 고개에 올라서지 않아도 이미 운무는 내 발밑까지 따라와 있는 듯하지만 난 사방을 살피지 않기로 했다.더 높이 올라가 운무가 장관인 그 운해를 일시에 탄성으로 쏟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올라도 올라도 나뭇가지에 걸린 시야를 벗어나 지지 못한다. 풍경을 살피지 않아도 촉촉한 길이 너무 좋다. 외줄기 좁다란 길엔 가랑잎 하나도 없는 내가 긋고 싶은 내 마음의 선이 되어준다. 누군가는 지나갔고 누군가는 따라오는 선 그것이 길이다
드디어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오른편에는 소양강운해 왼편에는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운해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섬으로 만들었고 푸른 소나무와 춤추는 고사목까지 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멋진 수묵담채화를 그린다. 자연의 화가는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놓치는 법이 없다. 인간들은 그 흉내를 내면서 2등 삼등을 다툴 뿐이다.
마음속에 미술대전의 대상 작품 하나를 담고 선동 계곡으로 가파르게 내려와 아직도 붉은 가을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단풍나무 숲 한편 넓은 반석에서 친구와 둘이서 점심을 먹는데 나뭇잎 하나 한들거리지 않고 빛살만이 쏟아지는 골짜기가 어찌나 따뜻하고 한가로운지 한없는 고요 속의 정적으로 세러피까지 마치고 내려가니 겨울 계곡이 참 좋다. 아래쪽에 청평사가 있는 계곡엔 수많은 설화를 담고 있어 이야기 속 줄거리를 더듬어 가는 발길 같았다. 청평사 경내에 들어서니 우뚝한 산봉우리 밑에 낮게 자라 잡은 산사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따뜻했다. 청평사의 특징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문 대신에 조선 중기에 세워진 절의 문, 보물 제164호인 큼직하고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아 문과 좌우 행각을 지었는데 회전문이 있었다. 회전문을 통과해서 경운루에 올라사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 좋았다.
양지바른 경내를 벗어나서 주차장으로 가는데 짙은 산그늘이 뿜어내는 싸늘한 공기마저 싫지 않은 맛있는 공기로 포만감이 느껴지는 겨울여행이었다.
춤추는 고사목
적멸보궁의 부처님 진신사리탑
수행자들이 참선수행을 하던 척번대
절집의 월동준비
청평사 전경
회전문, 보물 164호
경우로
경운루 위쪽
청평호 선착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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