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속리산 문장대 가는 길

반야화 2016. 11. 30. 13:33

 목적지가 없는 나그네 길은 어디서나 훌훌히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목적지를 정해두고 오르는 길은 정직하게 올라야 한다. 정도로 가지 않고 반칙을 하면 아무리 높이 올라도 내려와야 한다.비록 그것이 최고 권력의 자리일지라도, 하필이면 오늘 권력에 금 가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라니..

 

짧은 가을은 매일이 바쁜 마음인데 올 가을은 단풍산행 한 번 못하고 통째로 날아갔다.한꺼번에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어서 대신 동유럽의 가을 색채에 푹 빠졌던 가을이어서 우리나라 산들의 단풍과 비교를 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다. 우리나라 산의 가을은 무척이나 다채롭고 화려한데 동유럽의 가을은 전체는 몰라도 내가 본 그곳의 가을 색채는 노란색이 많고 은은한 갈색톤이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산행을 했다. 몇 달만에 가는 산행이고 몸 상태도 안 좋아서 걱정을 했는지 다행히도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컨디션이 좋은 걸 보면 역시 산은 만병통치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여러 산을 다녔는데도 이상하게 속리산을 가지 못했다. 늘 기회를 놓치곤 했는데 속리산 일정이 참 반가웠다. 그만큼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꽃보다 하늘"이라고 할 만큼 요즘은 맑고 투명한 하늘 보기가 쉽지가 않다. 꽃도, 단풍도 없는 겨울산행은 하늘이 관건이다. 바람도 없는 하늘의 진면목을 보면서 우리는 법주사 쪽과 완전 반대쪽인 상주에 있는 화북분소에서 올랐다.

 

겨울은 해가 잘 들지 않는 계곡쪽의 샛길은 얼어있기 일쑤다. 아직 한겨울은 아니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일까? 성불사 쪽으로 쭈욱 올라가던 선두 주자들이 길이 없다며 약간 내려와서 우리는 성불사 오른쪽 샛길로 접어들었다. 낙엽이 몰려 있는 좁은 길은 한동안 걷기에 참 좋았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은은한 녹차향이 우러나오고 촉촉한 땅에서 올라오는 상쾌한 공기와 푸른 하늘을 이고 가는 길에 온 마음을 씻어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오르고 나니 가파른 깔딱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힘들게 올랐던 깔딱 고개에 올라서니 더 나아갈 수 있는 평이한 길이 없다. 진퇴양난에 빠졌지만 모험을 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시간적으로 보면 약 한 시간 반 동안 1000미터 정도를 올랐으니 내려와야 한다는 것에 힘이 쭈욱 빠졌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전체가 낭패를 보니까 안전한 길을 찾자며 내려오면서 좌우를 살펴도 우회 길이 없었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찮다.낙엽이 감추고 있는 돌멩이, 너무 뿌리, 언 땅 등 무심코 디딘 하산길은 여러 명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하면서 올랐던 만큼 같은 길로 내려오니 어느새 1시 20분이 되고 처음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 유일한 기억을 만드는 날이다. 성불사 밑 개울가에서 점심을 먹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문장대까지는 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 부지런히 올랐다. 그냥 포기하기엔 날씨가 너무 아깝기 때문에 편찮은 무릎에 체중을 실어서 악을 쓰고 오르는데 도중에 만난 우뚝한 봉우리를 보고 "저기가 문장대일까" 하면서 몇 번이나 속으면서 가는데 문장대라는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나름대로 생각해보면서 걷는데 양 쪽에 반듯하게 쪼개진 암석들이 마치 어떤 유려한 문장을 써도 좋다는 듯 노트 같은 바위가 많은 걸 보니 문장석이 많아서 속리산의 중심에 경외감이 드는 그 봉우리가 문장대가 이 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 길 깊숙히 들어앉은 문장대가 드디어 보인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멋진 봉우리에는 마치 주인공이 받는 스포트라이트 불빛 같은 햇빛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속리산 중심지에 국립공원 전체를 관장하듯이 우뚝한 봉우리는 바라보기만 해도 벅차다. 잠시 인증삿을 남기고 정수리에 오르니 눈앞에 처음 목적지였던 천황봉은 문장대에 믿치지 못하는 것 같아 그곳에 가지 않아도 후회될 것 없고 계획된 지점을 다 못 간다 해도 이 한 곳 문장대면 만족하리라는 마음이 들고 고생했던 오늘 하루의 노고가 상쇄되고도 남을 만큼 충족이 되는 순간을 맞아 감탄했다. 그러나 겨울 풍경이어서 2프로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은 눈으로 보는 만큼 사진의 색채가 좋지 않다는 것이 아까웠다.

 

산행이 게을렀던 나를 산은 알았을까? 오늘 그 댓가를 호되게 치렀다. 오르고 내린 길을 하나로 이으면 문장대밖에 못 봤지만 그 길이는 설악산 대청을 오른 만큼의 높이를 왕복하고 3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힘들었지만 날씨가 주는 기분 좋은 느낌과 문장대에서 조망한 사방의 풍경이 그 모든 힘든 여정에 지친 몸을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는 보람된 산행이었다.

 

겨우살이 한테는 겨울이 봄이다.

 

오송 폭포

성불사

성불사 가는 길

 

 

 

 

문장대 가는 길

 

 

 

 

 

 

 

 

 

 

 

 

 

 

 

문장대에 눈이 있었을 때의 표지판

 

 

바위가 제 아무리 단단해도 살아 있는 나무의 힘이 더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단면

바위를 뚫겠다는 듣는 일념이 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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