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5월에 느닷없이 관악산으로 간 적이 있다.
비 온 후 너무 맑아서 계획에도 없던 일을 생각이 일면 바로 실천하던 열정적이던 그 시기에 있었던 기억들이 망각 속에 묻히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찾은 그곳, 지난 기억들이 잊힌 자리에 새로움으로 가득 차는 사이 난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나갔다. 서울 근교 산행에서 벗어나 "산 넘어 저쪽"이란 칼 붓세의 시구처럼 멀리 가면 더 좋은 걸 본다는 생각에 빠져 한동안 헤매었다. 시에는 행복 찾아 멀리까지 갔다가 눈물까지 거두어 되돌아왔다고 하지만 난 그렇지는 않았다. 행복은 찾아 나선다고 찾아지는 게 아니라 행복을 줄 수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서 행복을 맛보고 그 행복은 그 자리에 두고 오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찾아가면 항상 그곳에 있는 행복,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소유하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행복해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어제도 오월 어느 맑은날처럼 첫 번째 국기봉에 올랐더니 맑은 서울 도심이 한눈에 다 보인다. 잠실에서부터 안양까지 마치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의 하얀 꽃밭처럼 서울과 한강이 막힘없이 보이는 곳에 흰구름까지 한가로이 떠 다니고 있으니 마음까지 구름에 실려 세상을 유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좋은 그림 위에 서기 위해서 암벽 등산로를 수직상승을 해야 한다. 잊힌 기억 속에 있는 그 구간을 들춰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오르는데 참으로 아찔했다. 악자가 들어가는 산 이름이 순할리 없는데 어떤 코스에 어떤 구간이 있는지 모르고 들어서서 때로는 실수의 꽃이 될 수도 있어 굳이 모든 기억을 간직할 필요가 없는 것도 좋다.
관악산을 수없이 다녔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간 길도 있었다.서울조망이 끝나고 편안한 길을 걸으면서 차 한 잔 하고 기분 좋게 한참을 갔는데 연주대를 향해가는 또 하나의 암벽길, 이번에는 암벽을 기어올랐다가 옆으로 로프를 잡고 가는 길인데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정신통일의 길이었다. 관악산의 꽃인 연주대를 만나기 위함은 꽃을 피우기 위해 혹독한 겨울을 다 넘기고서야 피어나듯이 그 꽃을 보기 위한 여정이 길 위에 고스란히 시련의 발길로 다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 힘든 지점을 다 지나고서야 만날 수 있는 꽃은 역시 아름다웠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몇백 년을 지지 않고 피어 있는 한 송이 도의 꽃으로 나를 듯이 꽂혀있는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산을 찾는 의미는 충분하다.
연주대를 돌아나와서 이번엔 연주암으로 간다. 관악산을 찾을 때는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고 다녔다. 연주암에서 점심을 보시하기 때문에 절밥을 한 끼 먹는 맛과 재미도 있어서다. 아직도 그렇게 제공되는지는 어제는 점심시간이 늦어서 볼 수 없었다. 겨울이면 따뜻한 햇빛이 비쳐 드는 양지바른 요사체 난간에 쭉 늘어 앉아서 밥을 먹던 그 진풍경은 볼 수 없었으나 그 빈자리에 아련한 추억이 빛바랜 채 따스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행복을 남겨두고 떠나와 있다가 다시 그 자리에 가니 여전히 내가 남겨둔 채로 행복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산 넘어 저쪽에.
관악산의 꽃 연주대
연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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