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해마다 여름 한 철 삼복더위는 견디기 힘든 법인데 당해의 더위를 넘길 때는 "올해가 가장 더워"라는 말을 하게 된다.
올해는 또 가장 덥다고 아우성인 가운데 어느 날 갑자기 가을로 가는 길목에 선 것 같은 날씨다. 계절은 선을 그어놓고 오늘부터 가을이다라고 하지 않는다. 갑자기 성큼 맛을 보여주고 뒤로 물러났다가 서서히 바뀌는 과정을 계절마다 느끼는 점이다.
삼복더위를 피해서 두 달을 쉬다가 서늘한 기운에 산으로 갔더니 뜨겁던 여름이 남긴 상처들이 나뭇잎에 남아 있었다. 산꼭대기마다 이른 단풍이라도 든 것처럼 갈색들이 보이고 약간 울긋불긋한 가을의 흔적같이 남겨져 있었다. 올해는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을 것 같다. 초목들이 곱게 단장할 힘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벌써부터 마른 잎이 보이는 걸 보면, 사계절 중에 삼월과 구월은 가장 조건이 안 좋다. 그래서인지 산행 일정도 그리 좋지가 않다. 뭔가를 본다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운동삼아 가는 곳으로 잡히는 걸 보면, 이름도 생소한 상주에 있는 도장산으로 갔는데 하산을 하고도 무엇을 봤는지 남는 게 없다. 그저 그런 앞산이나 뒷산 같았다. 다만 속리산의 원경을 아련하게 보이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물이 흘러내리면 아름다운 골짜기로 물들러 가게 되리라 생각하며 기대를 한쪽에 걸어둔다. 그런데 올 가을은 우리나라가 아닌 동유럽에서 먼저 맞이할 것 같다. 그곳의 가을색은 어떠할지 무척 기대된다. 아름다운 동유럽 7개국의 가을을 담아서 돌아오면 우리나라 금수강산을 헤매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