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내다보면 아득하고 돌아보면 찰나 같은 시간이다. 그 긴 시간의 줄기는 거스를 수도, 머무를 수도 없어 그냥 흐르게 두더라도 그 줄기를 따라 흐르는 나라는 물체를 잠시 건져서 시작점에다가 다시 띄울 수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는 물체가 20년 전에 처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던 그 지점, 도봉산으로 갔다.
1992년 서울로 이사를 와서 이웃을 따라 처음으로 시작된 산행이 도봉산 원통사 가는 길이었다.그때만해도 젊었는데 계단을 오르면 무릎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나고 아팠지만 아프다고 하면 안 데리고 갈까 봐 속으로 아프면서 열심히 따라다녔더니 2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더 단단해져서 삐걱이지도 않고 더 멀리 더 높이 날고 있다. 요즘 몇 주째 한 달이 넘도록 원정 산행을 쉬면서 삼복더위에는 느리게 올라도 좋은 근교산을 오르기로 하고 친구와 둘이 도봉산 원통사로 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지만 산천은 변함없고 나만 변했더라.나는 산을 알아보는데 산은 나의 변모를 알아보지 못해 내치시는지 홀린 듯 길을 잘 못 들어 동그랗게 한 바뀌 돌다 보니 보문능선을 탄다는 게 무수골을 돌았다. 산은 그대로인데 산을 안고 도는 길들이 너무 변했고 북한산, 도봉산 둘레길이 생겨서 걷기 좋은 길이 되어 있었다. 엉뚱한 발길이 무수골을 만났고 명산에 명찰이 있을법한 그 자리에 아담한 산마을에 벼가 자라고 앞마당엔 토종꽃들로 어릴 적 고향의 작은 화단같이 이쁘게 꾸며져 있는 무수골엔 착한 사람만 사는 것처럼 이뻤다. 우리는 무수골 솔밭에서 간식과 커피를 마시면서 산바람이 흔들고 간 솔향까지 잔에 뿌려 마셨다.
돈두렁 밭두렁을 지나 조금 가다보니 원통사 방향표시가 있어 너무 반가웠고 그제야 느리게 느리게 맘 놓고 올랐다. 집에 있을 때는 가만히 있어도 진땀이 나는데 산속에는 당연한 땀은 어느새 잊어지고 풍요로운 계곡물, 맑은 바람, 풋풋한 숲과 흙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나오길 잘했다며 약 한 시간 정도 올랐더니 원통사가 나오는데 변한 게 또 있었다. 옛날에 나지막한 법당 한 채였던 절이 크게 증축이 되었고 기억에 없는 풍경들이 원통사 뒤로 그렇게 웅장하고 멋진 배경이 되어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핸드폰도 디카도 없었으니 기록도 없다. 다시 본 그 자리를 오늘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나의 건재함에 감사한다. 원통사를 지나 조금 오르면 우이암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관음봉인데 보이는 데로 우이암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이암 정면을 보고 조금 더 위로 가면 마치 거대한 검지 손가락을 편듯한 우이암 전체의 모습이 보이는 곳이 있다.
도봉산 최고의 봉우리와 오봉, 북한산 백운대까지 가까이 보이는 명당자리 넓작한 반석에 한 남자가 마치 신선이 내려와 낮잠을 자듯이 우리들의 감탄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옆에는 고양이가 다가와 먹을걸 청해서 치즈와 빵을 주었더니 하루의 허기를 채우고 물은 주어도 먹지 않았다. 남의 눈 의식 않고 낮잠 자는 사람과 너무도 대조적인 궁핍한 고양이가 눈에 밟힌다.
근교에 갖출것 다 갖춘 국립공원의 산을 두고 더 좋은 걸 보겠다고 원행을 했던 마음을 잠시 돌려 추억 속의 그 산을 찾았더니 얼마나 좋던지 도대체 더 낫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조용하고 느리게 자주 찾아야겠다.
의상능선 산마루에 담긴 삼각산 백운대,만경대.노적봉
운무에 쌓인 인수봉
만경대
향로봉
족두리봉
나른 듯이 봉긋 솟은 비봉
사모바위
비봉 정상 아래 있는 코뿔소바위
의상능선 풍경
비봉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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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으로는 도봉산 대표적 봉우리
도봉산 왼쪽부터, 칼바위, 주봉, 자운봉, 선인봉,, 만장봉, 신선대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
자운봉
선인봉
신선대와 만장봉
원통사
원통사 종각
우이암
우이암 측면
오봉
보현봉과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