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설악산 만경대

반야화 2016. 10. 5. 12:54

촌철살인 같은 우리나라 속담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요즘 연일 떠들썩한 뉴스가 있었다. 마침 가을을 맞아 46년 만에 개방한 만경대 이야기다. 하나를 막으면 다른 하나를 틔워줘야 하는 이치가 경화를 막는 건 맞다. 그러나 그것이 일시적일 때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경관 좋은 설악산 흘림골을 막으면서 가을 비경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만경대를 개방했다. 시간적으로 따지면 내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것에든 부화뇌동이 일어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그 숨겨졌던 비경을 보고 싶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조기출발에 맞혀 새벽하늘 쳐다보면서 집을 나섰다. 푸른 첫새벽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고 잠이 덜 깬 내 정신도 초롱초롱해진다.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가시거리가 깨끗한 만경대의 정수리를 타고 흐를 가을의 서정에 넋을 놓고 바라볼 내가 거기에 서있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었다. 만산홍엽이 아니면 어때, 버들잎 한 장에도 천하의 봄을 느낀다고 하지 않던가, 한 장의 단풍만 봐도 천하의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생각만으로도 꽉 차 있는데, 그런 들뜬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계령을 넘어 오색으로 내려가니 그 초롱초롱하던 하늘은 간 곳 없고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마음에도 구름이 드리워진다. 그러나 설악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니까 금방 맑은 얼굴을 드러낼지도 모르지 하면서 주전골에 드러서니 여전히 비는 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그냥 걷는다.

 

이틀이나 비가 와서 주전골 계곡에는 맑은 옥수가 흐르고 용소폭포의 물줄기는 세차게 떨어져 소 안에서 소용돌이를 치며 주전골을 메우는 인파들의 탄성까지 다 묻어버린다. 그리고는 청옥빛 소안으로 떨어질 듯 하늘거리는 단풍잎 하나만으로 마치 오늘의 결정적인 드라마틱한 비경 전체에 어떤 한 장면을 취하는 스틸 사진을 보는 것 같아진다. 용소 삼거리에서 우회전 방향으로 임시 개통한 길로 들어서는데 빗줄기는 굵어지고 발길은 무거워진다. 그런데 임시방편인 길을 오를수록 진흙이 비에 젖어 아주 미끄럽고 난간도 없는 외줄기 길을 나처럼 부화뇌동에 이끌린듯한 노파가 위태위태하게 오르는 게 안타까웠다. 나에겐 이 정도의 길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평소에 산 한 번 오르지 않던 사람들까지 다 불러내는 매스컴의 위력에 한 몫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문제였다. 자칫하면 받혀줄 나무 한 그루 없는 낭떠러지가 아슬아슬한 길을 지방에서 차를 대절해서 전국의 인파들을 외줄기 길 위에 다 풀어놨으니 아직 사람의 발소리가 익숙지 않던 새길조차 감당이 안 되어 놀랐을 정도였다.

 

짙은 구름 속에 부슬비는 내리고 바로 앞 풍경만 겨우 보이는 길 양편에는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들이 부부처럼 쌍을 이루며 꼿꼿이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전망대까지 올랐는데 미리 실망을 하면서 오르긴 했지만 그러나 그러나 이건 너무하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좀 기다리면 보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자꾸만 올라오는 구름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실루엣이라도 보여주지, 저 구름 뒤에는 어떤 장면들이 연출되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길 없어 한시적이라는 단서가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도 자연을 이겼다는 소리는 들은 적 없으니 "내려가자" "초자연적인 그 무엇을 보려고 욕심 낸 내 탓을 하자"설악산 공룡능선엔 내가 원하는 비경이 다 숨겨져 있고 아름다운 바위꽃인 화채봉과 온갖 위용이 다 들어찬 설악산의 비경을 다 봐놓고 그 외에 더 무엇이 있을 거라고 그리 욕심을 부렸는지............

 

우리는 가끔 상반되는 두 가지 소식을 전할 때"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을래?"라는 질문을 던질 때 약간은 힘들 때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두 가지 다 나쁜 소식뿐이다. 더 힘들었던 건 지금부터다. 출발하기 전에는 다 둘러보는데 약 4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해서 A코스팀과 B코스 팀으로 나누어진 일행의 A팀은 대청봉으로 가고 평소에 한 번도 B코스를 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계산적으론 시간차가 두 시간 정도 나는 건 근처에 산책을 하면 되겠지 했는데 이게 웬일? 두 시간 만에 만경대를 다 보고 내려와서 식당에서 점심까지 먹었는데도 12시가 조금 넘는다. 비까지 오는데 나머지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하다. 그래서 족욕하는 곳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차로 갔더니 기사 아저씨가 없다. 전화를 했더니 산에서 가고 있는 중인데 한 시간 반은 걸릴꺼란다. 그래서 다시 비 피할 곳이 족욕하는 지붕이 있는 곳으로 뛰어내려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차로 갔다.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직 기사분이 안 왔구나 하고 다시 냐려갔다. 이제는 왔겠지 싶어 다시 주차장으로 뛰어올라 갔다. 또 두드려도 없다. 또 내려갔다. 네 번째 다른 사람도 오고 해서 가서 두드렸더니 문이 열린다 안에서 자고 있었나 보다.

 

아, 화가 난다. 비가 오는데 다른 수많은 차들은 다 문을 열어놓고 있는데 우리 차는...... 세상에 그렇게 비 오는 밖에서 3시간, 차 안에서 3시간 6시간을 A코스팀을 기다렸다. 그런데 옆에 있던 어떤 이는 7시간을 기다렸다고 성화다. 약간의 시간차는 미리 알고 간다. 적당히 시간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비까지 오니 너무 힘들었던 하루다. 원하는 풍경이라도 봤으면 나쁜 건 상쇄가 될 수도 있는지 그것도 아니니 오늘의 기분은 정말 망친 거다. 산행도 안 했는데 자고 나니 불편한 심신이 어느 때보다 몸의 상태가 안 좋다. 이 모든 기분을 씻어낼 아름답고 한편 처절하게 다가올 가을 풍경을 기다려야겠다.

 

어찌 보면 혼용무도한 시절의 기분전환 같은 것이었을까? 요즘 사회분위기, 정치권, 형편없이 돌아가고 있으니 그 이슈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어 짤막한 콩트 하나 마련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것일까? 그런 생각까지 들게 하는 건, 만경대라는 콩트가 찬사를 보낼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좋은 날 한 폭의 장관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지방에서 차를 대절해서 올만한 곳은 아니었다. 우선 코스가 짧아 하루의 볼거리도 안 되고 길이 너무 위태하다. 수많은 인파가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리고 등산객만 오는 게 아니라 아무나 다 나와서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들 보니 안타까웠다. 한시적 개방만 아니어도 한꺼번에 그렇게 전국에서 모여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디 멀리서 온 사람들 다치지 말고 조심해서 실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매스컴에 너무 휘둘리지자.

 

 

 

 

 

 

 

 

 

 

 

여기까지가 주전골 풍경이다.

만경대 가는 길

 

 

 

 

무엇이 숨어 있을까?

 

 

 

'등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천 오봉산  (0) 2016.12.21
속리산 문장대 가는 길  (0) 2016.11.30
관악산 사당코스  (0) 2016.09.14
원도봉계곡  (0) 2016.09.07
상주 도장산  (0) 201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