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9일
이틀째 코스: 신양항ㅡ모진이 몽돌해변ㅡ황경헌의 묘ㅡ신대산 전망대 ㅡ 예초리 기정길 ㅡ 예초리 포구 ㅡ엄바위 장승 ㅡ 돈대산 입구 ㅡ돈대산 정상.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도미구이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모텔급도 아닌 여관에 추가로 신청한 사람 때문에 6명이 한 방을 썼다. 방의 공간은 충분했지만 욕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불편한 곳에서 차례로 씻고 모여 앉아 여정을 푸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각처에서 모인 비슷한 연령대의 한국 아줌마의 입담, 각자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주로 화젯거리는 올레에 대한 이야기와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다들 보헤미안적인 삶이 엿보였다.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이 끝나고 나만을 위해 살 줄 아는 여인들, 역할이 끝났다고 다들 그렇게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은 세계를 주름잡는 자유분방한 시간과 여유가 있어 보이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어제는 상추자를 돌고 오늘은 신양항에서부터 하추자를 도는 일정이다. 해변길을 걸어서 몽돌해변에 서면 고운 자갈돌 위로 돌이 구르면서 소르르 소르르 물 빠지는 소리가 정겹고 둥그런 해변의 곡선이 아름다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길 옆에는 옛날 우물이 있는데 아직도 물이 맑아 농작물에 물 주기 용도로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물을 들여다보니 내 모습이 보인다. 하나 둘 모여서 여인들이 들이민 우물 안은 어느새 그림같이 이쁘고 나르시스의 전설을 연상케 했다. 이런 작은 즐거움이 있어 소소한 행복감이 더하는 여정이 된다.
다시 언덕으로 오르는 길가에 황경헌의 묘가 있다. 황경헌의 모친은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이며 남편 황사영이 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뒤 두 살 베기 아들 경헌과 유배길에 올랐다고 한다. 호송선이 이곳 예초리에 머물자 몰래 아들의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저고리에 싸서 바위틈에 두고 떠났는데 지나던 주민이 발견해서 잘 키워서 오늘까지 그 후손이 이어진다고 전한다. 묘 위쪽에는 어머니의 애달펐던 마음이 느껴지는 모정의 쉼터가 있고 추자 10 경이 10 경이 소개된 사진이 있다. 추자 10 경이면 추자도의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건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내가 느낀 10 경이라면 무엇보다 예초리 기정길을 꼽고 싶다. 해변가를 아슬아슬하게 좁다란 길이 나 있고 숲이 우거져 고개를 숙이고 걸을 정도로 아슬한 이쁜 절경이 있는 길이다. 올레라는 테마에 잘 어울리는 길이다.
추자 10경
1. 우두 일출: 우두도의 일출, 소의 머리 위로 해가 뜨는 것 같은 풍경
2. 직구 낙조: 직구도의 아름다운 저녁노을,
3. 신데어유: 천혜의 황금어장이 있어 낚시꾼이 즐겨 찾는 곳
4. 수덕 낙안: 수덕도의 모양이 사자머리를 닮았는데 그곳에 기러기가 앉았다가 고기를 잡으려고 내려 꽂히는 모습
5.:석두청산: 청도라는 섬의 산세가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6. 장작 평산: 신양 포구(장작지)에 작은 돌들이 300미터의 자갈해변을 이루고 있는 모습.
7. 망 도수향: 추자군도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타향에 나갔던 사람들이 강도가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곳
8. 횡 간추 범: 횡간도는 제주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 흰 돛을 단 범선들이 떠가는 풍경
9. 추포 어화: 제주에 속한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작은 유인도, 멸치 떼가 가장 많이 모이는 섬으로 어둠 속의 멸치잡이 불빛이 장관인 곳
10. 곽게창파: 곽게도에 유배객들이 들어올 때 이 섬에서 갓을 벗었다고 하는 섬, 푸른 물결이 세상 인연을 지워버릴 듯이 흐르는 곳.
세월이 변하고 보는 눈과 느낌도 다 다르니 옛 선조들이 느꼈던 애환이 있던 곳들이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는 추자의 10 경이다. 이렇게 추자 10경을 다 보고 오후 4시 10분 배로 제주로 나왔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우리를 위해 비를 참고 있었던 것 같은 감사한 마음으로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행복한 하루였다.
황경헌의 묘
몽돌해변
나르시스의 전설, 나르시스는 이러다가 수선화가
되었지만 난 죽어 꽃이 되기보다는 삶이 더 좋다.
예초리 기정길이 밑으로 길게 이어진다. 나의 추자 10경
엄바위 장승
참굴비가 된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