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제주올레 13코스

반야화 2015. 9. 30. 12:39

2015.6.21일

제주올레 13코스, 산딸기 따먹는 재미에 푹 빠진 날이다.

용수포구에서 시작해서 저지오름을 지나 마을회관에서 끝나는 14.7킬로의 난이도 중간 정도의 길인데 이 코스에선 좋다는 말만 되뇌면서 걸었다. 바닷가에서 시작점 사진을 찍고 돌아서 마을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오래된 섬집을 만난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원주민들의 집이 안타까워 자료로 남겨두는 것도 좋겠다 싶어 사진을 찍는다. 요즘은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본토의 집들은 사라져 간다. 외지인이 사서 현대식으로 꾸미기도 하지만 불편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주의 생활방식이 바뀌는 탓에 점점 옛 모습은 사라져 가고 어쩌다 작고 이쁜 섬집 마을에 우뚝한 현대식 양옥이 들어서면 그게 멋진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내 눈엔 흉하고 이물질같이 보이는지.......

 

겨울엔 무, 당근, 감자 같은 작물이 검은흙을 파랗게 덮었더니 요즘은 들판을 지날 때마다 기장이 새파랗게 들판을 장식하고 있어서 처음으로 걷는 여름 올레의 맛을 더해준다. 밭 사이로 난 농로에는 딸기가 꽃처럼 이쁘게 익어 간다. 앞서간 사람들이 다음 사람을 위해서 남겨둔 것인지 일손이 바빠 농민들은 손 갈 여가가 없었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말짱히 남겨져 있는지 오랜만에 보는 산딸기가 탐스럽고 따는 재미, 먹는 재미에 푹 빠져서 걷다 보니 대로변에 작은 성당이 있었다. 작아서 더욱 아름다운 곳, 나그네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 줄 것 같은 앙증스러운 쉼터에 들어서면 절로 두 손이 모아지도록 발길을 잡는 곳이다. 규모에 비해 정원과 건축의 아름다운 조화가 그림같이 아름다움이 있었다. 성당을 지나면 용수저수지가 나온다. 13코스에는 물이 많은 지역이어서 용수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곳곳에 습지가 있고 연못도 있고 저수지도 있고 그래서 농업용 수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13코스는 숲길이 많아서 좋았다. 들판보다 좁다란 오솔길이 많아서 걷는 재미가 배가되는 코스다. 용수리 들판과 대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특전사 길로 들어서는데, 숲이 우거지고 깊어서 특별히 만들지 않았다면 그 재미있는 숲길로 들어설 수 없었을 텐데 감사한 마음으로 걸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할 곳이 또 있었다. 특전사 길, 고목나무숲 길, 고사리 숲 길을 지나면 숲 속 인적이 드문 곳에 자판기만 한 크기의 일류 카페가 있다. 조수리 마을 청년회에서 설치했다는, 물을 끓여서 커피를 타 마실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작은 쉼터에서 지나는 올레꾼들의 큰 감동이 빈 컵에 빼곡히 적혀 있어서 우리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포개 놓고 지났다.

 

조수리 마을을 지나 큰 도로를 건너면 다시 낙천리 의자마을로 들어가는 숲길이 이어진다. 그런데 왜 의자마을일까 하고 궁금증을 가지고 걷는데 숲 길에 작은 의자 5개가 드문드문 있는 걸 보고 "이게 이자 마을이라는 거야"라고 푸념하면서 한참을 걷다 보니 놀라울 정도의 갖가지 의자들이 즐비한 의자마을이 있었다. 사람은 없고 빈 의자만 있어서 아까울 정도였고 부지가 넓어서 직장단체가 워크숍 장소로도 좋고 온 가족이 놀기에도 아주 좋아 보였다. 의자마을에 잠시 쉬어 나가니 밭에서 아낙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어떤 일인지 물었더니 탱자나무에 귤나무를 접붙이기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놀이하듯 즐거운 마음 같아 보였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저지오름이다. 처음에 길을 잘 못 들어 아리랑길에서 14코스를 시작했고 저지오름에만 오른 적이 있어서 13코스에 흥미를 못 느끼다가 끄트머리만 걸은 것이 못내 아쉬워서 이번에 새로 시작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때 경험하지 못했던 저지오름 분화구에 들어가는 아주 특별한 체험 때문이었다. 분화구를 한눈에 그 깊이를 눈으로 보는 것도 어려운데 그곳에 들어간다니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깊이가 62 미터면 아파트 20층을 퐁당 빠뜨려도 쑥 들어가는 깊이다. 그 둘레는 직경이 255미터나 된다. 그 둘레를 다 돌고 나면 나무계단을 통해서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냥 지나치는 바보 같은 사람도 있어 보여주고 싶었다. 거기는 꼭 들어가 봐야 하는 곳이다. 저지오름이 아니면 전국, 아니 세계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떤 발길도 허용치 않는 분화구 밑바닥엔 무성한 수풀이 우거져 있고 사람은 깊이 10미터 정도 위에서 발길을 멈추는 곳이다. 용암이 이글거리던 지옥 같았을 그곳이 이제는 새파란 우물 같은 격세지감만이 있을 뿐이었다.

 

13코스, 길을 내어준 특전사 분들, 커피를 공짜로 주시던 따뜻한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담하고 이쁜 성당

 

용수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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